<207> ‘욱’하는 부모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사람에게는 감정의 그릇이 있다. 그 그릇에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차오르다가 별안간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 이른바 ‘욱’이다. 부모들이 욱하는 모습을 보면 두 부류다. 하나는 감정을 담는 그릇 자체가 너무 작아서, 조금만 불편한 감정이 유발되어도 바로 분출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항상 짜증과 신경질을 달고 있다. 다른 하나는 감정의 그릇은 그렇게 작지 않아 평상시에는 제법 잘 참고, 온순한 성격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정의 그릇에서 한 방울이 넘치면 ‘하이드 씨’가 되어 버린다. 문제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한 방울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주변 사람은 늘 불안하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흔히 “내가 욱해서” “내가 좀 다혈질이잖아”라고 하는 사람은 감정 조절이 미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감정 발달은 후천적이다. 보통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습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직접 감정 조절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가족 간에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부모가 감정 발달이 잘되지 못해 감정 조절에 미숙하다면 아이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이를 키울 때 화나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낯설거나 당황스럽거나 민망하거나 슬프거나 애잔한 모습 등 굉장히 다양한 상황과 원인, 감정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욱으로 표현한다. 부모가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아이의 다양한 감정을 끄집어내 줄 수 없다. 욱하는 부모가 가진 감정 표현은 단순하고, 종류도 몇 가지 안 되고, 강도는 항상 세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학습한 아이는 감정 발달을 그르치게 된다. 우리의 뇌에서 다양한 감정을 조율하는 부위가 변연계다. 부모가 욱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자란 아이는 이 변연계가 무뎌진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무딘 아이가 된다.
“내가 좀 욱하지만 뒤끝이 없잖아.” 욱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화를 잘 내는 것을 자기표현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뒤끝 없다’는 말만큼 상대의 감정에 대한 고려가 빠진 말도 없다. ‘욱’은 상대와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이다. 그런데 ‘욱’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온통 ‘자기 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 감정만 중요하다. 마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듣는 것에는 미숙한 것과 같다. 늘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 우선시하기 때문에, 내가 이 표현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욱은 관계에서 굉장히 파괴적이다. 사회생활에서의 욱은 관계의 포기, 단절, 파괴를 가져올 때가 많다. 부모 자녀 관계에서는 더욱 치명적이다. 어찌 보면 사회에서의 욱은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지만, 아이와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욱하고 나서 부모들이 하는 소리다. 하지만 부모의 욱 때문에 성인이 되면 연을 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딱 한 번 욱했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부모가 끊임없이 별것 아닌 일에 화내고 욱하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에 비해 반응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떤 결정적인 일이 발생하고 섭섭한 마음이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부모를 안 보고 싶어 한다.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벽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의 연을 어떻게 끊겠는가. 겉으로는 관계를 끊은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서는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고통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