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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왜 ‘김정은 얼굴 배지’가 등장했을까? [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7-01 10:46:00


김정은 국무위원장 얼굴이 단독으로 새겨진 배지.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배지 문화의 변화

일요일인 3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 2일 차 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단독으로 새겨진 배지가 처음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참석 간부 전원이 배지를 왼쪽 가슴 위에 달고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얼굴을 배지로 만들어 인민들이 ‘심장에 모시도록’ 하는 정책을 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이다. 다만 2024년이라는 국제화 시대에 이게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젊은 지도자의 얼굴이 들어간 배지가 새로 만들어졌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싶다. ‘Why?’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북한 내부에서는 어떤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2일 회의가 지난 29일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발언을 하고 있는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가슴에 김정은 ‘초상휘장’이 부착돼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 가능. 평양 노동신문=뉴스1


일단 우리 민족의 문화에 배지라는 게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사진이라는 것도 없었고 쇠에 그림을 붙이는 기술도 없었으니 배지가 없었을 테고 그럼 일제 시대에 그런 문화가 있었나?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럼, 한국과 북한에서 지도자의 얼굴을 배지로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것은 언제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을까? 의심해 보는 것은 북한의 배지가 중국에서 넘어간 문화일 가능성이다. 중국에서 모택동(마오쩌둥)의 배지가 대중화된 것은 1966년 문화대혁명 시작 때부터이다. 봉건적이거나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면서 일반인들은 최고 권력자인 주석을 숭배하는 경쟁에 몰두하게 된다. 마오쩌둥 사진과 어록, 포스터, 배지 등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상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배지는 홍위병들 사이에서 획일적인 복장에 개성을 주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오쩌둥 배지는 ‘진품’과 ‘짝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허가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진품은 모든 인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지 않았다. 어떤 순서와 서열에 따라 보급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에 대해 충성 경쟁에 나섰던 홍위병들은 배지를 사기 위해 상점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섰으며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배지를 판매하는 암시장도 번창했다. 상하이의 경우 75개의 공장이 잔업까지 하면서 한 달에 1500만 개의 배지를 찍어냈고 우한은 600만 개. 난징은 100만 개 배지를 생산하였다. 1968년이 되자 전국의 배지 생산량은 한 달에 5000만 개를 상회하였다. 천안문 광장 주변에는 작은 마오저뚱 사진 열 장과 배지 한 개를 교환하는 장터도 형성되었었다. 랑크 디쾨터가 쓰고 고기탁이 옮김 “문화대혁명(2017)”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 김일성 김정일 쌍상 배지를 가장 먼저 가슴에서 떼버린 김정은 부부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북측 대표단 뱃지.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는 젊은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이런 구시대적인 배지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도 상상해 본다. 김정은은 2010년 9월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공식 후계자가 된 이후 할아버지 김일성 초상휘장을 왼쪽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 위원장 사망 직후에도 김일성 배지를 달았다. 그러다가 2012년 4월 7일 해군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은이 북한 내부에서는 처음으로 김일성-김정일의 얼굴이 같이 들어가고 크기도 커진 ‘쌍상(雙象)’ 배지를 달았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 싱가포르정부 제공

흥미로운 점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 나서면서 김정은이 북한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떼고 나타났었다는 점이다. 김여정과 최선희 등 Team North Korea의 모든 수행원들은 쌍상 배지를 달고 나왔다. 트럼프와 폼페이오 장관 등 Team USA의 성조기 배지처럼. 하지만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도 배지를 달지 않았다. 사실 2015년 여름부터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는 간헐적으로 쌍상 배지를 달지 않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리설주의 경우 처음 북한 인민들에게 얼굴을 보이던 몇 번을 제외하곤 배지 대신 여성들이 좋아하는 큰 브로치를 달고 등장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사진을 통해 두 사람을 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쌍상 배지를 가장 먼저 달았던 최고지도자 부부가 가장 먼저 배지를 떼기 시작한 것이다. 선대로부터 독립적인 지도자의 위상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중국의 지도자들조차 마오쩌둥 배지를 거의 달지 않는 국제 정치의 표준을 따르기 위함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최고지도자의 배지라는 상징을 배척해 왔다. 중국 외교관 리자오싱은 2014년 펴낸 자서전에서 중국이 마오쩌둥 우상화를 위해 노력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1967년 10월 케냐 정부가 중국 대사관 측이 마오쩌둥 저작과 어록 그리고 상장(휘장)을 케냐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고 1969년에는 마오쩌둥 저작을 케냐 영토 안에서 발행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선포했다는 설명이다. 2015년 중반 김정은 부부의 가슴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김일성-김정일 배지. 이게 북한 변화의 상징이길 기대했었다.

● 배지 배급은 권력 순서대로

김정은의 착용 이후 쌍상 배지는 북한 사회에서 공식 배지가 되었으며 권력의 크기 순서에 따라 착용하기 시작했다. 쌍상 배지의 배급은 북한 내부의 서열과 계층 순서에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 2018년 6.12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날 평양역에서 북한 주민들이 야외 스크린을 통해 전날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야간 외출 보도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외신 사진기자가 찍은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평양의 일반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지, 쌍상 배지는 받지 못한 것 같았다. 2018년 3월 평양에서 열린 한국 공연단을 보러 온 사람들은 쌍상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던 태권도 공연의 경우에는 관람하는 북한 사람들이 대부분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꼭 기득권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등장해야 하는 경우 쌍상 배지를 우선 지급받는 것 같았다. 2013년 5월 라오스에서 북한으로 재북송되었던 꽃제비 청소년들이 쌍상 배지를 달고 북한 방송에 출현한 것은 이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개수의 배지가 시장에 풀리면 그걸 먼저 착용하는 사람은 출신 성분을 증명할 수 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의 생활 속에 밀착시키는 효과와 함께 충성심이 높은 순서대로 줄을 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아이콘을 하나씩 갖고 있다. 연예인일 수도 자기 아이일 수도 부모일 수도 꽃일 수도 여행지일 수도 있다. 충성하지 않으면 배제될 거라는 두려움에 북한 인민들은 충성의 상징인 배지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 권력자의 얼굴이 배지로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보며 든 생각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