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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단순 침범’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4-07-01 23:06:00

지뢰 매설, 불모지 조성 작업 등을 위해 비무장지대(DMZ) 내 휴전선(MDL·군사분계선)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최근 북한군이 대규모로 투입된 모습. 합동참모본부

손효주 정치부 기자



“6월 9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작업하던 북한군 일부가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을 단순 침범해 우리 군의 경고방송 및 경고사격 이후 북상했다.”

지난달 11일 합동참모본부의 발표 내용을 보고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단순’이란 표현 때문이었다. 중무장한 북한군을 코앞에서 대적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단순 침범’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근원적인 의문부터 들었다. ‘단순 음주 운전’처럼 기묘한 단어 조합으로도 보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즉강끝’ 대응 원칙을 강조해 왔다.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한다’는 의미다. 일반인들도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분명한 메시지였던 덕분인지 군사작전 원칙으로는 이례적으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신조어로도 등록됐다.

현 군 당국의 기조가 이처럼 ‘즉강끝’으로 상징되기에 ‘단순 침범’이란 표현은 더 낯설었다. ‘단순’이라는 용어로 침범 성격을 규정한 곳이 국군 최고 군령(軍令·작전 지휘권) 기구인 합참이어서 일각에선 군이 상황을 안이하게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합참은 지난달 9일 두 차례에 걸친 침범은 물론이고 18, 20일 침범도 공식·비공식 브리핑에서 ‘단순 침범’이라고 했다.

북한군의 휴전선 침범은 일단 발생 빈도만 봐도 단순하지 않다. 2013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군이 휴전선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한 해는 올해를 제외하면 두 해가 전부다. 2014년엔 6월 한 차례, 10∼11월 세 차례 등 총 네 차례였다. 2015년엔 7월 두 차례였는데, 침범 20여 일 뒤 DMZ 내에서 목함 지뢰 도발이 일어났다.

북한군의 휴전선 침범과 우리의 경고사격은 9년 만에 발생한 것으로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과거에 비해 최단기간인 12일 이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물론 군 당국은 열상감시장비(TOD) 등 북한과 비교가 되지 않는 첨단 장비로 북한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했다. 그렇기에 경고방송도 사격도 가능했다. 감시 정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군에게 공격 의도가 없었던 것도 명확했다. 한번에 20∼30명씩 무리 지어 내려온 이들은 대부분 올 4월부터 북한이 휴전선 전 전선에 걸쳐 진행 중인 DMZ 내 지뢰 매설, 불모지 조성 작업 등에 긴급 투입된 후방 병력이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DMZ 내 지형지물과 휴전선 위치를 잘 모르는 탓에 작업 중 곡괭이 등을 들고 우르르 침범했다가 사격에 놀라 돌아간 것이다. 동서로 248km 길이인 휴전선에는 과거 1290개가 넘는 말뚝과 표지판이 100∼200m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지만 대부분 낡고 유실되면서 휴전선의 정확한 위치를 북한군이 가늠하기 어렵다. 의도치 않은 침범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인 건 사실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단순 침범’이란 표현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군 관계자는 “단순 침범이 명확함에도 북한군의 의도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식으로 발표하면 ‘공격 의도가 있을 수도 있는데 왜 경고사격을 뛰어넘는 군사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불필요한 논란만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또 “우리 내부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이로 인해 우리 군이 과도하게 비난받아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군은 대외적으로는 ‘단순 침범’이라면서도 북한군이 DMZ 내에서 지뢰 매설을 하는 장면 등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은 휴전선 침범이 있었던 지난달 18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으니 기습 도발할 엄두를 내지 말라는 경고로 풀이됐다. ‘단순 침범’을 반복하는 식으로 DMZ 내에서 우리 군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건 곧 오판이 될 것이란 메시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물 풍선 테러에 미사일 도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의 연이은 대남 위협 등으로 안보 불안과 국민적 피로감은 최고치에 달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군이 북한군의 침범 의도를 과장해 발표함으로써 불안을 더 부추길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단순 침범’이라고 발표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단순 침범’을 ‘단순 침범’이라 하는 대신 ‘작업 중 침범’ 등 다른 명확한 단어를 썼더라면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우리 군이 먼저 ‘단순 침범’이라고 못 박은 것을 이용해 북한군은 허를 찌르는 기습 도발에 나설지 모른다. ‘단순 침범’을 반복하다가 기습 총격에 나서는 방식으로 우리 군의 대북 정보 분석 능력을 농락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물 풍선 테러를 사흘 연속 감행한 것에 더해 미사일 도발까지 이어가는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선 언제까지고 ‘단순 침범’만 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