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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환자도 의사도 한계에… 정부가 답 내놓을 차례”[의대교수-환자단체 첫 대화]

입력 | 2024-07-02 03:00:00

의료공백 5개월, 처음 마주앉은 의대교수-환자단체
“의대 증원 숫자보다 중요한건
무너지는 필수-지역의료 살리기
정부-전공의 이제 만나서 대화를”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물에 빠져 소리치고 있는데 다들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느낌입니다.”(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

“불안감을 갖게 해드린 점 너무 송구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지킬 겁니다.”(은영민 연세대 의대 소아과 교수)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시작된 의료 공백이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을 중단했지만 일부 대학병원에선 ‘자율적 휴진’을 진행하고 있어 환자 불안도 여전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만난 의대 교수와 환자단체 대표는 “의사 대다수가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만큼 이제 정부가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30일 식도암 4기 환자인 김 회장은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연구동에서 은 교수를 만나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의료 공백 사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의대 교수와 환자단체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1 대 1로 만나 의료 공백 해법을 논의한 건 이번 사태가 발생한 후 처음이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선언했지만 은 교수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과는 환자를 절대 떠날 수 없다”며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김 회장은 “의료 현장을 지킨다면 환자는 의사 편”이라며 감사를 표한 뒤 “여전히 많은 환자가 의료진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 때 사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했다.

둘은 의대 2000명 증원보다 중요한 건 무너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은 교수는 “문제의 시작은 필수의료과가 여전히 1980년대 수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라며 “밤새우며 중환자를 살려도 병원에선 왜 수익을 못 올렸냐고 한소리 듣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도 “(2000명이란) 숫자가 본질이 아니고 필수의료와 지역·공공의료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한데 구체적인 로드맵은 하나도 없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김 회장과 은 교수는 의료 현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이제라도 전공의와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회장은 “정부와 전공의 모두 조건 없이 무장해제하고 만났으면 좋겠다”며 “환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전공의를 만나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은 교수도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전공의 목소리를 정부가 들을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이 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자-의사 “정부 의료공백 대책, 현장서 큰 효과 못봐” 한목소리
[의료공백 5개월, 정부에 묻는다] 〈1〉 마주앉은 환자단체-의대교수
“물에 빠진 환자 보고 구경만 하나”
“불안감 갖게 해 너무 송구합니다”
예산-인프라 뒷받침 근본 대책 요구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환자들은 고구마를 만 개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정치권에 (2월 6일 의대 증원 발표 이후) 150일 동안 뭘 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13시간 넘게 진행된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를 보면서 답답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여야 의원 24명이 똑같은 질문을 하면 정부는 그동안 했던 얘기를 되풀이했다”며 “환자 목소리가 배제되고 환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 속상했다”고 말했다. 은 교수도 “의사들도 앞으로 나아가는 얘기가 없어 실망했다”고 동의했다.

● “정부 보여주기식 대책 효과 없어”

두 사람은 동아일보가 마련한 대화 자리에서 정부의 의료공백 대책이 현장에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 회장은 “보건복지부에서 비상진료체계에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환자들이 느끼는 것과 너무 다르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는데 예산이나 인프라가 미리 준비된 것 같지 않다. 실질적이지 않아 대책이 나올 때마다 비판 성명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은 교수도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낙후 지역 공중보건의를 차출하는데 그러면 지역 어르신이 아프실 때 누가 약을 처방하느냐. 출혈 부위를 지혈해야 하는데 주변만 닦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위해 마련한 처우 개선 대책에 대해서도 “수련 시스템 개선에는 반드시 국가의 투자와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데 지금 (정부는) 이를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 환자단체 “암 환자 진료 포기 늘어”

김 회장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암환자 등 중증 환자들의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그는 “과거에는 더 이상 치료할 약이 없어도 항암제를 바꾸거나 방사선 치료로 바꾸거나 했다. 그러면 누구는 1년을 더 살고, 또 누구는 삶의 의지가 생겨 4∼5년도 살았는데 지금은 바로 호스피스로 가길 권유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병원들이 신규 환자를 안 받는다고 지적하며 “새로 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원하는 병원에서 원하는 교수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료공백 사태 이후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환자’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는 것에 대해선 “죽을 환자가 어디 있느냐. 조금이라도 살릴 가능성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을 듣던 은 교수는 “저도 주변에 암 투병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충분히 어떤 기분인지 이해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동시에 “최근 무슨 요일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저도) 환자를 보고 있다”며 “교수도 사람이니 체력의 한계로 쓰러지는 사람이 나온다. 그렇다고 버티기 위해 진료량을 줄이면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 조사에 따르면 의료공백 이후 의대 교수들의 주당 근무 시간은 70∼100시간에 달한다.

● “의사-환자 같이 목소리 내자”

둘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의대 증원이 현재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은 교수는 “소아과를 전공한 의사 수는 지금도 늘고 있는데 문제는 진료를 볼수록 마이너스가 되다 보니 이들이 계속 필수의료 의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수를 늘리면 편중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도 “필수의료에 어떻게 인원을 배분할 건지, 지역에 어떤 인프라를 만들 건지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전공의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점에도 의견이 일치했다. 은 교수는 “정부에 바라는 두 가지는 전공의와 직접 대면해 문제의 핵심을 꺼내 놓는 것, 그리고 의료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의료계) 실무자들과 논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도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은 많은 시간과 재원이 필요한 만큼 정부도 더 의지를 보이고 직접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은 앞으로 이 같은 대화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은 교수는 “(의사와 환자가) 전체적으로 손잡고 정부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도 “오늘 은 교수를 만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며 “전공의들에게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환자와 유지해야 할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지 고민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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