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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뚫린 엔화…850원대인데 더 떨어진다고?[딥다이브]

입력 | 2024-07-03 10:00:00


바닥마저 뚫렸습니다. 일본 엔화 가치가 추락을 거듭하면서 1일엔 달러당 161.7엔까지 떨어졌는데요. 놀라운 건 다수 전문가가 아직 끝이 아니라고 본다는 겁니다. 이제 시장에선 3분기 달러당 175엔 전망까지 나온다죠.

상식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좀 이상합니다. 그동안 ‘일본 금리 인상=엔저 탈출’이 당연한 공식인 줄로 알았는데요. 어째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멈추지 않는 슈퍼 엔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오른다 했던 엔화 가치가 무섭게 떨어지고 있다. 뉴시스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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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과 거꾸로 간 엔화 환율
“3년 연속의 엔화 하락이 2024년엔 끝날 것이다.” 지난해 12월 블룸버그 기사는 이러한 전문가 전망을 전하며 일본 엔화를 2024년의 ‘톱 픽(Top Pick)‘으로 꼽았죠. 당시 집계된 엔화가치 전망치 중간값은 2024년 말 달러당 135엔. 그 근거는 아주 명쾌했습니다. “주요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고,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에서 정책을 전환하면 달러-엔 환율은 하락 압력에 직면할 게 확실합니다.”(스미토모미쓰이D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타케시 요코우치)

이런 전망을 믿고 미리 엔화에 투자해 놓은 분들 많았죠. 우리나라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지난해 9월 1조엔을 넘은 뒤 이후 올해 들어 더 불어났다는데요(6월 말 1조2928억엔). 그만큼 이제 엔화 가치가 오를 일만 남았다고 보고 많이들 베팅한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모두의 예상대로 지난 3월 일본은행은 17년 만의 금리 인상에 나섰죠. -0.1%이던 단기 정책금리를 +0.1%로 올려, 무려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출한 건데요.

2024년 1월부터 최근까지의 달러-엔 환율 추이. 연초 달러당 140.88엔이었던 환율이 161엔을 넘어섰다. 엔화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인베스팅 닷컴

그래서 엔화 가치는? 전 세계 전문가 전망과는 정반대로 아주 무섭게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를 달러당 140.88엔으로 시작했건만, 그동안 단 한 번도 140 밑으로는 가본 적 없고요. 어느덧 달러당 161엔마저 돌파했습니다. 6개월 만에 환율이 달러당 20엔 넘게 뛴 거죠. 엔화가치로는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데요. 참고로 원·엔 환율은 지난달 28일 기준 100엔당 855.6원. 2008년 1월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엔화 가치가 이렇게 급락하는 동안 일본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난 4월 29일 환율이 장 초반 160엔을 찍자, 일본 정부는 보유한 달러를 쏟아부어 방어에 나섰죠. 이 당시 무려 620억 달러의 외환 보유액을 소진했는데요.

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불과 두 달 만에 161엔 선마저 무너진 겁니다. 이제 전문가들 사이엔 일본 정부의 ‘새로운 방어선은 어디일까’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데요. 일본 정부가 언제 환율 방어를 위해 나설지 그 시점을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무의미할 겁니다.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구조적인 요인이 바뀌지 않는다면요.


일본은행은 너무 느리다
슈퍼 엔저의 구조적 요인은 명확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는 겁니다. 기준금리가 미국은 5.5%, 일본은 0.1%니까 말이죠.

환율은 그 나라 돈과 다른 나라 돈을 비교한 상대적 가치이죠. 환율은 하루 거래규모가 약 7.5조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어디에 베팅하느냐에 따라 매일 결정되는데요. 지금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채권 수익률이 더 높은 미국 자산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엔화보다는 달러를 원한다는 투자자가 훨씬 많다는 뜻이죠.

여기에 고전적인 투자 수요까지 가세했습니다. 일본에서 아주 싼 금리로 현금을 빌린 뒤 환전해서(엔화 매도), 이걸 가지고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거죠. 이걸 ‘엔 캐리 트레이드’라고 부르는데요. 엔 캐리 트레이드는 엔화 가치가 떨어질 때 하락을 더 부채질합니다. 최근 엔화 가치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데는 최근의 엔 캐리 트레이드 증가가 한몫했죠.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경제학자 출신인 그가 지난해 2월 임명되면서 통화정책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실제론 예상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AP 뉴시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금리 격차 이제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왜 추세가 안 바뀌죠?’

네, 그렇습니다.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렸죠. -0.1%에서 0.1%로. 또 어쩌면 일본은행이 7월 말에 한 번 더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마 0.25%로?

자, 바로 여기서 슈퍼 엔저가 멈추지 않는 이유가 나옵니다.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변화를 꾀하고 금리를 올리긴 올렸는데요. 그 변화폭이 너무 미미합니다. 3월에 찔끔 올리고 내내 동결 중. 속도가 심하게 느리죠.

또 금리만 살짝 올렸을 뿐이지, 일본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정책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한다는 건 시중에 돈을 푼다는 뜻이죠. 결국 금리를 내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초래하는데요. 최근 회의(6월 13~14일)에서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 축소를 7월에 하겠다고 미뤘습니다. 바로 발표 나올 줄 알았던 시장 참가자들은 맥이 빠졌죠. 일본은행은 이상할 정도로 신중합니다.

그래서 이제 시장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의지가 있는 게 맞아?’라고요. 일본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엔화가치 추락을 부채질하는 겁니다.


정부부채 때문에 못 올리나
괜한 의심이 아닙니다. 일본 경제가 초저금리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서 ‘금리가 있는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울 거란 우려가 상당히 큰데요. 이 점 때문에 일본은행이 통화 정상화를 향해 성큼성큼 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부채이죠.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최악(250%)인 나라입니다. 부채가 많은 만큼 일본 정부가 채권자(주로 일본은행, 일본 금융회사, 일본 국민)에 지불하는 이자도 엄청난데요. 올해 국채 이자지불용 예산만 9.6조엔입니다. 올해 방위비(예산 7.9조엔)보다 훨씬 큰돈을 국채 이자로 내는 거죠.

그런데 만약 여기서 금리가 더 오른다면? 일본 재무성 계산에 따르면 2033년엔 국채 이자로 내야 할 금액이 24.8조~33.5조엔으로 불어날 겁니다. 어마어마하죠.

정부 재정 측면에선 금리는 무조건 낮을수록 좋은 겁니다. 혹시 오르더라도 아주 천천히 조금만 오르는 게 안전하죠. BNP파리바증권의 가와노 류타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은행이 지나치게 팽창한 정부 부채를 우려해서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도쿄 시내의 환율 전광판 모습. 이후 엔화가치는 더 떨어졌고, 달러-엔 환율은 7월 1일 달러당 161.74엔까지 올랐다. AP 뉴시스

일본은행을 멈칫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내수 부진입니다. 보통 금리 인상을 포함한 통화 긴축 정책은 경제가 호황일 때 쓰는 카드이죠. 원래 일본은행과 정부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이거였습니다. ‘물가가 올라서→임금이 오르면→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좋아진다.’ 이른바 ‘임금-물가 선순환’인데요. 이런 선순환을 확인하면, 그땐 마음 편히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죠.

이 중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까지는 성공했습니다. 올해 일본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이 5.58%로 3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으니까요. 하지만 소비는 아직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차가 있어서 아마도 올해 하반기엔 지갑이 두둑해진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늘릴 거란 전망도 있긴 한데요.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 일단 일본엔 근로 수입이 없는 고령가구가 너무 많고요(전체 2인 이상 가구 중 34.6%가 무직). 40~50대 역시 지난 잃어버린 30년 동안 ‘디플레이션 마인드’에 찌들었습니다. 절약이 최선이고 소비와 대출은 가급적 줄이는 게 몸에 밴 거죠. 임금-물가 선순환의 마지막 고리가 제대로 끼워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신중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를 충분히 확인하기 전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미스터 엔’은 누구
그래서 현재로선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여러 차례 팍팍 올릴 것 같진 않습니다. 엔화 가치가 금세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인데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취합한 외환 전문가 전망에서 3개월 뒤 엔화가치가 지금보다 높아질 거라고 내다본 이는 없었습니다. 대신 달러당 164엔(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우노 다이스케 전략가) 또는 170~175엔(도카이도쿄인텔리전스의 시바타 히데키 전략가)까지 더 갈 수 있다고 내다봤죠. 지난 4월처럼 또다시 일본 정부가 시장 개입(보유한 달러를 대거 팔아 엔화를 매입)하더라도 반짝 효과에 그칠 거라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세계 경제 대통령인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이 시대의 ‘미스터 엔’이기도 하다. 참고로 ‘미스터 엔’은 과거 1997~1999년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폈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의 별명이었다. AP 뉴시스

그럼, 슈퍼 엔저 탈출은 요원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제 외환시장은 일본은행 대신 모두 여기를 바라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블룸버그 칼럼의 표현대로 이제 이 구역의 새로운 ‘미스터 엔(Mr. Yen)’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환율은 통화의 상대적 가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은행의 조심스러운 움직임(마이너스 금리 해제 등)은 달러·엔 환율 결정에 있어 사소한 역할만 할 뿐이라는 게 지난 몇 달 동안 확인됐습니다. 일본은행이 쭈뼛거리는 사이, 대신 키를 쥐게 된 건 연준입니다. 미 연준 통화정책이 사실상 엔화 가치를 좌우하는 변수인 거죠.

미 연준이 정책금리를 인하한다는 확실한 신호가 언제 나오느냐. 그에 따라 결국 엔화 가치 움직임도 결정될 겁니다. 앞으로 엔화의 방향을 알고 싶으면 일본은행이나 재무성 발표보다는 연준 통화정책 관련 경제지표-미국의 소비자물가 또는 고용 관련 데이터-를 예의 주시해야 하는 거죠. ‘엔고’로의 추세적 전환은 언젠가는 시작되긴 하겠지만, 그 주인공은 가즈오 총재가 아닌 파월 의장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얼마 전 모임에서 엔화가치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요즘 엔화값이 왜 이리 떨어지냐’는 질문에 ‘미국과의 금리 격차 때문’이라고 답했는데요. 너무 간단히 답을 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 돌아오더군요. 그래서 이번 레터를 통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써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엔화 가치가 추락 중입니다. 1일엔 달러당 161.7엔까지 기록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환율이 20엔 넘게 오른 거죠.

-결국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구조적 원인입니다. 일본은행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정책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일본 정부의 막대한 부채 부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소비 탓에 일본은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식이면 3분기엔 엔화 환율이 달러당 170~175엔까지 갈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일본 재무성의 시장개입도 별 소용 없을 겁니다.

-엔저 추세를 되돌릴 주인공은 아마도 일본은행보단 미국 연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엔화 환율이 궁금하다면 미국 경제지표에 주목하세요.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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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