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버니즈동물병원 영상 캡처
그날 하니는 무대 위에서 영락없는 80년대 아이돌이다. 걸스 힙합은 잘 모르니 묻지 말라는 듯이, 절제된 율동으로만 살랑거린다. 한국식 칼군무와 대조되는, 어쩌면 약간 미숙한 게 매력인 쇼와 아이돌의 재림.
곡이 시작되자 일본 관객들은 전주에 일격을 당한 것처럼 ‘어어’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가 “아 와타시노 코이와(あ- 私の恋は·나의 사랑은~)”에서 함성을 내지른다. 관객들은 그 깜찍하고도 영리한 의외성에 기분 좋게 놀라고 있다.
‘이봐들, 정신차려’ 라고 말하기엔 나도 영상을 보다가 어느새 푸른 산호초의 트로피칼 댄스 리듬에 이미 젖어들어 버렸다. 아침 회의 때도 자꾸만 속으로 노래 가사가 맴돌아서 큰일이다. 다음 칼럼 주제가 뭐냐고 물어봐도 ‘아 와타시노 코이와’라고 흥얼거리는 정신머리.
유튜브에 올라온 푸른 산호초 무대 직캠은 나흘 만에 300만 조회수를 넘겼다. 이날 무대는 한일 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계속 화제다.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 것을 두고, 양국 언론은 1980년 마츠다 세이코가 취입한 이 곡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풍요로운 버블 경제 시기를 떠올리게끔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일본에선 지금도 1980년대가 그리운 시기로 자주 소환되는 만큼, 노래 선곡에서부터 정서적 공감과 울림이 컸다는 것이다. 일본의 중장년층은 분명 그랬을 수 있겠다.
사람들의 무대 반응이 우리가 늘 한일 관계를 바라보던 구도와 다른 점도 흥미롭다. 한일 젊은 세대에겐 ‘한국 가수가 일본 도쿄돔을 제패했다’ 같은 대결적 느낌이 없다. 한일 양쪽 모두 유튜브 댓글창에선 모두 청량한 노래가 주는 벅찬 향수의 감정을 함께 느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양국 사람들이 비록 개개인마다 추억은 다를지라도, 애틋한 느낌을 공유하고 이를 공통의 대화 주제로 올린다.
그러나 그땐 노래가 영화에서 직접 흘러나오진 않고, 배우들이 흥얼거리기만해서 정확히 어떤 멜로디인지 알 수 없었다. 유언치곤 가사가 적절치 않아서 문제일 뿐, 분명 애절하고 쓸쓸한 정서가 담긴 곡일 것이라 짐작했다.
짐작만 할 뿐 그 노래 찾아볼 생각을 못했던 건, 러브레터가 한국에 소개될 무렵엔 일본 문화개방을 시작(1998년)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고 유튜브도 없어서 중학생이 쉽게 검색할 수 없어서였다. 실은 무엇보다 일본 문화를 표현하는 ‘왜색’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화감이 커서 찾아보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때다. 일본 문화에 취하면 엑스재팬 머리를 하고 고등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란 걱정이 있었다. 내 마음이 잠식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걱정과 그러면서도 화제가 된 일본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마음이 교차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시티팝 유행이 시작된 몇 년 전 유튜브 추천영상에 마츠다 세이코가 부른 푸른 산호초 영상이 뜬 건 어떤 조화일까. 그제야 음악을 들어보고선, 러브레터에서 나온 설정을 제대로 이해했다. 노래는 세상 그리 청량할 수 없었다. 설원 위에 누워서 노래 가사를 되뇌었을 러브레터 여자 주인공의 심정이 아주 긴 세월을 지나 도착했다. 그 영화도 그 노래도 그저 마음에 관한 것.
뉴진스 하니의 노래를 들으면서 일본 사람들이 추억에 젖어들 때, 그들과는 결이 같진 않지만 나 역시 유년 시절과 영화를 다시 떠올렸다. 음악은 듣는 이를 각자 다른 추억으로 데려가는데도, 결국 서로 비슷한 감정에 도달하게 만든다. 음악이 지닌 이 굉장한 힘만을 생각한다. 한국, 일본 양국 사람들이 뭉근한 감정 속으로 함께 빨려들어간다. 마린룩으로 부르는 푸른 산호초라니. 계속 흥얼거리게 하다니. 공감하게 하다니.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