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법 ‘책무구조도’ 도입 잇단 횡령 등에 내부통제 강화 금융지주-은행은 6개월간 유예 일각 “금융당국 지나치게 개입”
금융 사고가 났을 때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책무구조도’가 3일부터 도입된다. 배임, 횡령 등 개인 일탈이라도 금융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은행장 등 CEO까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금융사의 업무 분장과 조직 체계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3일 시행됨에 따라 금융권 질의사항 등에 대한 답변 내용을 담은 해설서를 마련했다고 2일 밝혔다. 책무구조도란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직책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문서다. 금융사 대표이사에게는 책무의 누락·중복·편중이 없도록 책무구조도를 마련할 의무가 주어진다. 다만 금융지주와 은행에는 6개월의 유예기간이 부여돼 이들의 실제 제출 기한은 내년 1월까지다.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보험·증권·자산운용사에는 1년의 유예기간이 부여된다.
금융 당국은 회사가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시점부터 이를 위반한 경우 제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제재 수위 등에 대해선 향후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운영 지침’을 따로 마련해 공개할 예정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권에서 끊이지 않는 배임, 횡령 등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규제 장치다. 임직원마다 책무를 명확히 해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얘기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권에서 횡령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라며 “은행이 자율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지만, 사고가 거듭되다 보니 예방 차원에서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평가 수단을 (당국이) 마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책무구조도가 금융 사고 발생 시 금융 당국이 금융사를 손쉽게 징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권의 조직 문화가 내부통제를 위해 중요하지만 이를 금융 당국이 평가할 수 있을 만큼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객관적 지표라 보기 어려울 경우 정책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악용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 당국은 건전성 규제나 소비자 보호 같은 위법 사항을 다루는 것이 본연의 일”이라고 비판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