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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 쓴 국내산 임연수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5〉

입력 | 2024-07-02 23:03:00



마트나 수산시장에서 아내와 장을 볼 때면 생선 고르는 일은 내 몫이다. 신선도, 원산지 등을 꼼꼼히 살핀 후 선택하므로 다시 내려놓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둔 적이 여러 번 있다. 맛있는 걸 알지만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거부감이 불쑥 솟아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맛이지만 왠지 싫은 느낌. 이런 양가감정의 근원은 말할 것도 없이 군대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군대를 다녀온 중년 남성들은 기억할 것이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이 생선의 비릿한 냄새가 풍기면 병사들은 구시렁거리며 입맛을 잃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군대에서 먹던 수입산 임연수어와 국내산 임연수어는 다른 종이다. 그럼에도 한 번 각인된 부정적 인식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임연수어는 쏨뱅이목 쥐노래밋과로 임연수어(국내산)와 단기임연수어(수입산) 두 종만 있다. 단기임연수어는 주로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수입하는데 몸통에 4개 내외의 줄무늬가 굵고 선명해 국내산 임연수어와 쉽게 구별된다. 단기임연수어는 싱싱할 때의 맛도 국내산 임연수어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냉동과 운송, 해동하는 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비린내가 난다. 조리병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레 가루 섞은 밀가루를 입혀서 튀긴다. 비린내와 카레가 섞인 묘한 냄새는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다.

단기임연수어는 냉동으로 수입해 연중 판매되는 반면 국내산 임연수어는 겨울과 봄에 잡히므로 여름과 가을에는 시중에서 보기 어렵다. 수입산 임연수어는 싼 가격에 공급되지만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에 비해 인기가 없다. 단기임연수어가 수입되면서 임연수어 맛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진 게 원인일 터. 국내산 임연수어는 누명을 쓴 상황이다. ‘임연수어쌈 먹다가 천석꾼 망했다’, ‘임연수어 껍질 쌈밥 먹다가 배까지 팔아먹는다’, ‘임연수어 쌈밥은 첩도 모르게 먹는다’라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로 별미로 여기던 생선이었으니 억울할 수밖에.

임연수어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난호어목지(1820년경)에 임연수어(林延壽魚) 기록이 있는데 임연수라는 사람이 낚던 생선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난호어목지보다 300여 년 이른 시기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1481년)에는 ‘臨淵水魚’라 표기해 난호어목지의 ‘林延壽魚’와는 전혀 다른 한자어를 사용했다. 임연수어 어원 역시 명태, 굴비, 도루묵 어원처럼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민간어원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집을 비울 아내가 냉장고에 잔뜩 먹거리를 넣어 두고 문짝에 메모지를 붙이고 있었다. 음식 목록을 보고 잘 챙겨 먹으라는 훈훈한 메모였는데 첫 줄에 ‘이면수’라 적힌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이면수’를 펜으로 두 줄 긋고 ‘임연수어’로 수정했다. 지켜보던 아내는 포장지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항변했다. 포장지를 확인했더니, ‘이면수[러시아]’라 기재돼 있었다. 이면수가 표준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임연수어를 강원도에서 새치, 다롱치, 가지랭이라 하고 이민수(함경북도), 찻치(함경남도), 이면수(경남) 등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경남 방언인 이면수를 러시아산에 붙이는 건 이상하다. 정직하고 정확하게 ‘단기임연수어[러시아]’라고 적는 게 맞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