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주요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자주 말하는 대답이 ‘애국심이 많다’는 것이다. 애국심이 많은 미국인은 한국인의 애국심도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인이 느끼는 애국심과 한국인이 느끼는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미국인 북한학 연구자 브라이언 마이어스는 그의 신간 ‘사랑받지 못하는 공화국’에서 한국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밝힌다. 적어도 10명 중 9명의 한국인이 대한민국이 언제 설립되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
택시를 타면서 친구는 60대 후반인 택시 기사에게도 그 질문을 던졌다. 그 기사는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 같지만 지금 기억이 흐릿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10년 전에 마이어스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가 사회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항상 과거와 미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와 같은 역사의식이 강한 사회라고 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람들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연월일을 적지도 않았던 고대 그리스와 같은 역사의식이 약한 사회라고 했다. 마이어스는 대학생들도 본국의 역사를 일관성 있게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을 역사의식이 약한 사회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했다.
어째서 누가 봐도 명백히 북한보다 성공한 한국은 북한보다 국가 정신을 함양하지 못했을까? 책은 여러 이유를 짚으면서 한국의 좌익과 우익 둘 다에 책임을 묻는다. 좌익은 북한의 정치 선전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완전한 독립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우익은 미국이 항상 한국을 보호할 거라고 믿어서 정당방위 인식을 확고히 확립하지 못하였다. 만약 내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면 미국이 구하러 올 것이지만 혹시라도 미국이 오지 않거나 올 수 없는 불가피한 그날에 대비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지난 15년 동안 마이어스의 북한에 대한 글을 꼼꼼히 읽어 온 나는 한국에 대한 그의 분석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북한이나 한국을 관찰하는 서양인과 달리 그가 한국어를 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을 비판하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을 깊이 사랑해서 염려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인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려고 ‘사랑받지 못하는 공화국’을 한글로 썼다. 또한 마이어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제 미국보다 더 잘 돌아가는 국가라고 생각하는 한국 코너셔(connoisseur)인 나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한국에 사는 10년여의 세월 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떠올랐다. 한국인들이 왜 계속해서 한국을 다른 나라의 비현실적 환상과 비교하며 자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까? 왜 그렇게 많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이민 가면 스스로 국적을 포기할까? 왜 옛날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를까? 국가 정신 부재라는 개념이 이 질문들의 대답뿐만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들은 한국 농담의 의미도 조명할 수 있다. 그 농담은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알게 된 여러 나라 아내의 반응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 아내는 남편을 총으로 쏘고 미국 아내는 남편을 고소하며 한국 아내는 역시 정부를 탓한다.
콜린 마샬 미국 출신·칼럼니스트·‘한국 요약 금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