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엔 민간 주재관 파견도 내주 정상회의서 장기지원안 발표 나토 존립 기반 흔들릴 우려속 美대사 “트럼프 영향 사전 차단”
5월 15일 에스토니아 킬링기넘메에서 시행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훈련 ‘확고한 방어자(Steadfast Defender)’에 참여한 한 병사가 영국군의 주력 탱크인 ‘챌린저2’ 위에 앉아 있다. 다음 주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독일 사령부 신설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킬링기넘메=AP 뉴시스
북미와 유럽 등 서방국가의 안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최근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와 2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민간 주재관을 파견하고, 독일에 신규 사령부를 세워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나토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서방의 정치 상황이 나토 체제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방위비 문제를 놓고 나토 탈퇴까지 시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올 11월 재선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유럽에선 프랑스 총선에서 국민연합(RN)이 승리하는 등 자국우선주의를 주창하는 극우 세력들이 부상하고 있어 자칫 나토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단 우려가 깔려 있다.
● “우크라군, 나토군과 동급으로 강화”
나토가 독일 남서부 헤센주(州) 비스바덴에 세우는 사령부에는 32개 회원국에서 약 700명이 배치될 계획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나토 안보 지원 및 훈련’ 작전에 참가해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이 수행해 온 임무 대부분을 인계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는 해당 작전을 계기로 우크라이나군을 나토 군대와 동급으로 강화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WSJ는 “다만 이들은 지원에 초점을 두고 직접 군사훈련에 참여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와 직접 전쟁한다는 취지로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는 독일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 美 트럼프 2기와 유럽 극우 돌풍에 대비
나토의 이러한 행보는 그간 러시아와 직접적인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군 인력 파견 등을 꺼려 왔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WSJ는 “나토는 전쟁 초기엔 갈등 당사자란 비난을 피하려 우크라이나 군 작전과 거리를 뒀지만, 조직적 변화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싸우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의 탈퇴가 현실화되면, 나토는 재정적인 압박은 물론 각종 군사장비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에 미국이 지원을 줄이거나 철회하더라도 나토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보 달더르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도 “나토의 지원과 훈련을 조정하는 책임을 미국이 아닌 나토 자체가 맡는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의 영향을 차단(Trump-proof)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최근 분위기도 나토의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양대 정당이 4, 5위에 오른 데다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1위에 올랐다. 이달 4일 영국 총선 역시 극우 영국개혁당의 지지율이 17%로 급상승하며 집권 보수당(20%)을 위협하고 있다. 더글러스 루트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 유럽연합(EU)의 선거 결과에 나토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각국의 정치 변화에도 나토는 (우크라이나 지원 등의 대책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