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브레인 드레인’] ‘인재 유치’ 해외 빅테크 연봉 인상속 이공계 박사급 인재 대학 기피 심각 정부 R&D 예산 삭감도 악영향
최근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는 컴퓨터공학과 교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재공고를 두 차례 더 하고 나서야 채용할 수 있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갈수록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붐으로 해외 빅테크와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의 연봉이 수직 상승하며 대학교수보다는 기업을 선호하는 박사가 더 늘었다고 했다.
이공계 박사급 인재들의 대학 기피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로 박사후연구원을 나갔다가도 다시 국내로 돌아와 교수가 되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지방 대학부터 점점 이공계 교수들이 부족해지고 있다.
대학교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처우 때문이다. 2012년 등록금 동결 이후 13년째 대학교수들의 연봉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012년 기준 1억800여만 원이었던 서울대 정교수 연봉은 13년이 지난 현재 1억2000만 원으로 약 1200만 원 올랐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KAIST는 약 1억5000만 원, 포스텍은 1억6000만 원 선으로 1억 원대 초반이었던 10여 년 전의 연봉에서 크게 오르지 않았다. 대학만큼 이공계 박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정부출연연구소의 평균 연봉은 9554만 원이다.
KAIST의 한 교수는 “나조차도 해외로 나간 제자들에게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며 “지금 KAIST는 좋은 대학이지만 10년 뒤에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 정부의 일방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이런 기피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20년 이상 일해 온 한 과학자는 “보수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들이 가장 원하고 필요한 것은 연구의 지속 가능성”이라며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강조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필즈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한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좌교수도 올해 4월에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회의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