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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굶어도 이것만은”…8년간 ‘도시락’ 배달한 경찰관 [따만사]

입력 | 2024-07-04 12:00:00


대전경찰청 생활안전계에 근무 중인 백용식 경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대전 구석구석을 바쁘게 누빈다. 대전지역 식생활취약아동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여러 가정을 방문하면서 ‘사랑의 도시락’을 전달한다.

백 경감은 초등학생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돕는 과정에서 소외된 아동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을 돕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아내가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에서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제 아내가 먼저 이 봉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대학생, 고3, 중2 이렇게 자녀가 3명이에요. 후원 같은 것도 좋지만 엄마, 아빠와 같이 봉사를 하면 아이들이 보면서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봉사를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식생활취약아동 지원하는 ‘사랑의 도시락’ 프로그램
현재 전국의 결식아동 수는 약 28만 명에 달한다. ‘사랑의 도시락’ 사업은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고루 섭취하지 못하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주 5일, 1식 3찬의 도시락을 제공하는 식생활취약아동 지원 사업이다.

월드비전은 결식 우려가 있는 만18세 이하 저소득가정 아동들이 하루 한 끼,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2000년부터 24년간 도시락을 지원해 이들이 건강하게 보호받고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사업은 2024년 기준으로 백 경감이 활동 중인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를 포함한 전국 6개 사업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결식아동들에게 전달된 도시락 개수는 887만 9086개에 달한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선정 과정에 대해 “주로 행정복지센터나 복지관에서도 추천을 해주시고, 구청 사회복지정책과 등에서도 저희에게 요청합니다.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시락이 가야 되기 때문에 저희가 가서 지원에 적합한 가정인지 확인을 해보고 선정하죠.”라고 설명했다.



“끼니도 거르고 봉사…원동력은 ‘책임감’”
처음엔 1주일에 1~2번 있는 비번 날을 쪼개 도시락 배달 봉사에 참여했다. 그러다 점점 비번이 아닌 날에도 시간이 나면 봉사를 하고, 어떤 날은 끼니도 걸러 가면서 도시락 배달 봉사에 참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점점 비번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 날에도 그냥 시간이 되면 한 시간 정도 할애해서 봉사를 하게 됐어요. 하다 보니 하루도 안 빠지고 봉사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가급적 안 빠지고 개근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하루 종일 교육을 들어야 했던 어느 날에도, 백 경감은 자신의 점심 끼니를 챙기는 대신 점심시간을 이용해 도시락 배달을 하고 다시 교육을 들으러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걸 내가 안 하면 다른 봉사자가 해야 할 거고, 내게 주어진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구역은 내가 맡은 역할이니까 내가 하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하자’,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것만큼은 꾸준히 하자’ 그런 생각으로 하는 것 같아요.”


“격려와 감사의 말 한마디가 가장 큰 힘”
여러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도시락을 배달하는 과정에 고충도 있다. 배달 가정 대부분이 3~4층에 많이 살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할 때가 많다. 건강한 경찰관일지라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을 수 없다.

하루에 고정적으로 배달하는 곳이 10가정 정도고, 다른 지역에서 봉사자가 펑크가 날 경우에 5군데 정도 더 추가될 때도 있다. 도시락 메뉴에 신선식이 많다 보니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진다.

배달을 가는 가정이 좁은 골목에 있는 경우가 많아 차로 배달 갈 때는 주차도 쉽지 않다. 택배기사로 오인 받아 차를 대자마자 빨리 빼라고 빈축을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백 경감은 이런 고충들보다 코로나19 이후로 아이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점이 더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 전에는 그냥 도시락을 놓고 온다는 개념이 아니라 문 두드리고 사람을 직접 만났었는데, 코로나가 끝났지만 이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잘 안 나와요. 코로나 이후에도 그게 이제 익숙해지다 보니까 비대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좀 있더라고요.”

반대로 가장 큰 힘은 격려와 감사의 말 한 마디를 들을 때다.

“한번은 초인종 누르고 도시락을 놓아두고 내려왔는데 저 위층에서 한 할머니가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라고 외쳐주시더라고요. 힘들게 계단 오르내리고 땀 흘리면서 했는데 그냥 도시락을 놓고만 왔을 때보다 이런 격려와 감사의 말 한마디 해주시는 게 저한테는 가장 큰 힘입니다.”



“도시락 받는 아이들 낙인감 들지 않도록”
백 경감이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도시락을 지원 받는 아이들이 혹시나 부끄러움을 갖거나 낙인감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하루는 도시락을 배달하러 올라가다가 아이를 만났어요. 이거를 가지고 올라가라고 지금 줘야 되나 내가 다시 올라가야 되나 몇 번 고민을 하다가 같이 올라가서 주고 온 기억이 나요.”

백 경감이 언급한 아이는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했지만, 이 아이는 긍정적인 반응을 한 경우고, 대부분 봉사자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춘기인 아이들에겐 도시락을 받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들 수 있어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아이들 대부분이 사춘기다 보니까 그걸 고려해서 저도 이제 배달 나가면 아는 체를 해도 되는지 주위를 쓱 둘러보죠. 아무도 없을 때는 ‘안녕 잘 있었니?’ 인사하고 그러면 이제 그때 아이도 꾸벅 인사를 해주고는 합니다.”

월드비전 관계자 역시 “도시락을 받아드는 순간 우리 도시락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잖아요. 저희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낙인감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 봉사자분들도 그런 부분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세요.”



“어려움 딛고 남 돕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봉사를 시작한 전후로 백 경감의 마음가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죠. 직업이 경찰이다 보니까 경찰로서 하는 업무가 있잖아요. 경찰로서도 물론 시민에게 봉사하고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거는 직업으로 하는 거고, 그 외에도 개인 시간을 쪼개서 경찰이 아닌 같은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끝으로 백 경감은 자신의 ‘사랑의 도시락’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좀 가정 상황이 힘들고 그래서 이렇게 도시락도 지원을 받고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계기로 삼아서 나중에는 본인도 사회에 기여를 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