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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로남불’이 안 느껴지는 이유[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입력 | 2024-07-03 22:57:00



영화 ‘범죄도시’가 4편까지 나왔다. 1탄보다 나은 2탄이 힘든데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고 있기에 매우 예외적이다. 여러 흥행 요인이 있겠지만 주인공 마석도 형사(마동석)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체격과 괴력, 전투력의 소유자로 악당을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장면들은 항상 경이롭다. 범죄도시만은 영화관에 가서 그 액션의 타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아들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그런데 ‘범죄도시’ 영화를 보면서 늘 궁금하다. 마석도는 어떤 형사일까? 그가 ‘착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며 우락부락해 보여도 매우 순수하고 겸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다. 따로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부하 직원을 항상 아낀다. 하지만 그 착한 사람이 나쁜 악당만 보면 돌변한다. 한번 나쁜 놈을 발견하면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희생하면서 끝까지 쫓아가서 꼭 단죄하고야 만다. 그것도 묵사발을 만들어서. 이러니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착한 사람이 진짜 악당을 잡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약간 당황스럽다. 우선 악당들에게 금품을 갈취한다. 실제 현금도 빼앗고 음식값도 내게 하고, 공짜 유흥도 즐기고. 더 나쁜 악당을 잡기 위해서 다른 악당을 협박한다. 잡혀 온 악당을 고문하고 불법적으로 이용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서 수사권도 없이 현지 법률도 우습게 위반한다. 결과적으로는 그 불법이 모두 진짜 악당을 잡는 데 다 도움이 되기는 한다. 마석도 형사는 과연 좋은 형사일까? 만약 현실에서 그런 형사가 작은 악당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있을 때(아직 진짜 나쁜 악당을 잡기 전에) 우리가 그 장면을 봤다면, 그가 착한 사람이자 정의로운 형사인 걸 우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누군가 정의로운 결과를 위해 과정은 정의롭지 않아도 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마석도 형사를 보면서 불편한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열광한다. 이 모순에 한국 사회의 내로남불이 있다. 한국 사회의 관계주의는 행동보다 사람을 중시한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하지만, 나쁜 사람으로 찍히는 순간 더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나쁜 인간을 때려잡는 데 집중한다.

한국 사람은 절대 부정부패, 불법, 비윤리적 행동에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더 큰 정의를 위해, 더 나쁜 악당은 꼭 때려잡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것을 하겠다는 ‘착한’ 사람에게는 열광할 수 있다. 그 착한 사람의 부정부패, 불법, 비윤리적 행동은 넘어갈 수 있다. 무엇이 나쁜지 몰라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정의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이래서 자신의 내로남불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범죄도시가 흥행 열풍을 이어가는 이유도 한국 사회에 마석도 형사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우리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우리 사회의 마음에 슬픈 현실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