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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정민]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 ‘저출산 전쟁’ 걱정

입력 | 2024-07-03 23:12:00

하정민 국제부 차장



“0.8에 불과한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합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5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포럼의 연설자로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재집권설이 도는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경제사회적으로 강한 복원 능력을 보유했으며 그 비결이 3.0에 달하는 출산율이라고 했다.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조앤 윌리엄스 미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유명인은 많았다. 서울에서 8000km 떨어진 텔아비브에서도 같은 말을 들으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출산율이 0.65임을 알면 베네트 전 총리가 향후 강연에서 한국 상황을 더 언급할 것이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만난 많은 시민과 정재계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자식이 몇 명, 손주는 몇 명”이라며 번창한 후손을 자랑했다.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해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아워크라우드’의 존 메드베데프 CEO는 “네 자녀와 15명의 손주가 있다. 이 중 8명의 손주가 장남 소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은 2000년 넘게 떠돌다 간신히 나라를 세우고 아랍국에 둘러싸여 늘 전쟁을 치르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쪽수’에서 밀리면 나라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다.

다만 이스라엘을 무조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출산율 증가의 주역이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인 탓이다. 이들은 평균 6.6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 유대인(2.5명)의 약 세 배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을 때도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하레디 남편을 따라 7, 8명의 자녀를 데리고 가는 하레디 여성이 많았다.

2009년 75만 명이던 하레디 인구는 2022년 128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 945만 명의 13.5%다. 이들의 비중은 2035년 19%로 늘어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하레디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며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며 빈곤율도 44%에 달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저출산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집값, 사교육비, 일자리, 보육 제도 등을 개선해야 출산율이 오른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정책이 본질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보다 양육 환경이 우수하고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이 덜한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2013년 1.75였던 핀란드 출산율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1.26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즉, 복지제도 확대 같은 정책이 유의미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 인구 소멸 위기를 ‘비상사태’로 여기지 말고 상수(常數)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는 어쩔 수 없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