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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장택동]이재명 판결 앞두고 법원으로 전선 넓힌 민주당

입력 | 2024-07-03 23:15:00

장택동 논설위원



“사법부는 칼에도, 지갑에도 영향력이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법률가였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1788년에 쓴 글이다. 정책을 집행할 힘이 있는 행정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의회에 비해 사법부는 힘이 없다는 취지다. 그는 “(입법부, 행정부에 비해)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취약해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직 삼권분립의 개념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도 해밀턴을 인용해 ‘칼도 지갑도 없는 사법부’라고 말하는 판사들이 있지만, 이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원의 위상은 탄탄하다. “어느 칼이며, 어느 지갑도 사법부에 복종하지 않는 데가 있나”라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말처럼 법치주의 사회에서 판결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정당이나 정부는 내심 못마땅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겉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게 정석처럼 돼 있다.

판사 비판에 입법권까지 동원한 파상공세

하지만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는 다르다. 지난달 7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1심 재판부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이후 법원을 향해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이재명 전 대표는 “북한에 가겠다고 돈을 수십억 원씩 대신 내달라고 하면 중대범죄인데 이 전 부지사가 그걸 요구했다는 것인가. 이 전 부지사가 바보냐”고 했다.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측에 이 전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게 했다고 판시한 법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들린다.

민주당 의원들은 더 노골적이다.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은 “편파적 판결” “자의적 증거 판단”이라며 재판부를 공격했고, 민형배 의원은 “정치 검찰과 정치적 판결이 악의 고리로 연결된 느낌”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승원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판결문은 판사의 선입견,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적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전 부지사 담당 재판장에 대한 탄핵까지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사법부 통제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법 왜곡죄’다. 판사나 검사가 법을 왜곡해 적용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고소·고발을 쏟아내 법관들을 위축시킬 것이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자는 법안을 낸 배경도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 전 부지사 판결을 비판하며 “심판도 선출돼야”라는 글을 올린 것도 심상치 않다.

법원의 시간… 현실로 다가오는 ‘사법 리스크’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하나의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 차원을 넘어 민주당이 검찰에 이어 법원으로 전선(戰線)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검찰이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대표를 기소하면서 이 전 대표에 대한 주요 수사는 일단락됐고, 이제 법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당장 이 전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10월경 1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위증교사 사건도 1심 공판 절차가 마무리 단계다. 정면승부는 지금부터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잇따른 기소를 ‘정치검찰의 조작’이라고 비난해왔다. 그 주장대로라면 법원의 판결은 이 전 대표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검찰에 일격을 가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는 조용히 판결을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민주당은 오히려 법원을 몰아붙이고 있다. 힘으로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여론의 비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는 이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민주당에 얼마나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문제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