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 평생 4명의 군주를 모셨다. 마흔에 카를로스 3세의 궁정화가가 됐고, 3년 후인 1789년 카를로스 4세가 집권하자 이듬해에 수석 궁정화가 자리를 꿰찼다. 비록 정치적 격변기이기는 했으나 궁정인의 특권과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카를로스 4세 가족(1800∼1801·사진)’은 국왕의 명으로 그려진 왕실 가족의 초상화다. 큰 그림이 걸린 방 안에 카를로스 4세 부부를 중심으로 왕실 가족들이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들 화려한 옷을 입었고 남자들은 훈장이 여럿 달린 어깨띠를 맸다. 옷도 훈장도 보석도 번쩍번쩍 빛난다. 1800년 여름에 시작된 초상화는 무려 1년에 걸쳐 완성됐다.
권력자의 초상화는 최대한 미화해서 그리기 마련. 그런데 인물들이 그다지 미화됐다고 보기 힘들다. 모델의 실제 모습과 너무 닮아서일까? 오히려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백발의 왕은 배가 불룩 나와 있는 데다 흐리멍덩한 표정을 짓고 있어 군주의 위엄이 전혀 없다. 부와 권력에 취해 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탐욕스럽고 바보 같은 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야는 왕가의 무능과 부도덕함을 꼬집고 싶었던 걸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누구든 왕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터. 영리했던 고야는 유려한 붓질로 화려하고 빛나는 의복과 훈장, 보석을 강조함으로써 왕족들을 만족시켰고 끝내 속내를 들키지는 않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