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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가 만난 사람]“해낼 수 있을까 의문 지운 우승컵… 파리 올림픽 메달 꼭 목에 걸겠다”

입력 | 2024-07-04 23:15:00

17년 차에 메이저 첫 우승 양희영
10대 아마추어 시절 ‘천재 선수’ 소리 듣다… LPGA 데뷔 후 6년 무관에 번아웃까지
암벽타기-영화-독서로 회복력 얻어… “메이저 우승에 카리 웹도 축하 메시지
골프엔 마스터 레벨 없어, 쉼 없이 레슨”



양희영이 지난달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샷을 한 뒤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살피고 있다. 서매미시=AP 뉴시스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아닌데 메시지를 남겨 놀랐다.”

프로 골퍼 양희영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뒤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과분할 정도였다”며 “생각지 못했던 카리 웹이 축하 메시지를 남겼더라”고 했다. 양희영은 지난달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메이저대회 첫 우승이었다. 축하해 준 이들 중엔 카리 웹(50)도 있었다. 양희영은 그 전에 LPGA투어 대회에서 다섯 번 우승했다. 이땐 웹이 축하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 양희영은 열 살 때인 1999년 골프를 처음 시작했다. 그때 웹은 이미 레전드 선수였다. 메이저대회 일곱 번을 포함해 LPGA투어에서 41번이나 우승했다. 2005년엔 LPGA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양희영은 16세 때 웹의 나라 호주로 골프 유학을 갔다.》






양희영과 2일 전화 통화를 했다. 양희영은 11일부터 프랑스에서 열리는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을 앞두고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자택에 머물고 있다. 현지 시간 오전 9시경 연결된 양희영은 “레슨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지 며칠 안 됐는데 아침 일찍부터 또 레슨을 받으러 가나요”라고 묻자 “골프엔 ‘마스터 레벨’이 없다”고 했다. 조금만 놓고 있으면 까먹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골프라고 했다. “특히 나는 며칠만 쉬어도 감이 떨어진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골프를 금방 다 까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프로 골퍼 친구들과 밥 내기 같은 걸 할 때가 가끔 있다고 한다. “일주일 쉬다가 온 친구들도 몇 언더씩 치는데 나는 2, 3일만 쉬어도 오버 파가 나온다.”

메이저대회 정상에 서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LPGA투어에 2008년 데뷔했으니 햇수로 꼬박 17년이다. “그동안 많은 분이 ‘올해 목표는 뭐냐’고 물을 때마다 ‘메이저대회 우승’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상위권에 여러 번 오르고도 우승을 못 하니까 나 스스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증명해서 너무 기뻤다.”

양희영은 이번이 75번째 출전한 메이저대회였다. 그 전까지 준우승 두 번을 포함해 10위 이내에 21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상엔 좀처럼 닿지 못했다. “코치 선생님에게 ‘양희영은 앞으로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못 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코치 선생님이 그런 말을 듣게 해서 정말 미안했다.”

LPGA투어 첫 승도 쉽지 않았다. 투어 데뷔 6년 차이던 2013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했다. 프로로 전향하기 전 초청 선수로 출전한 것까지 넣으면 119번째 대회 만의 첫 우승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양희영은 ‘천재 골퍼’ 소리를 듣던 선수다.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2006년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당시 16세 6개월 8일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역대 최연소 우승이었다. 이 대회는 18세가 돼야 출전할 수 있었는데 주최 측이 양희영에게는 예외를 뒀다. 그만큼 실력이 탁월했다. 아마추어 선수가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도 22년 만의 일이었다. 양희영은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LET에서 두 번 더 우승하고 LPGA투어로 건너왔다.

아마추어 시절에 이름을 날렸으니 LPGA투어 데뷔 후 무관(無冠)으로 보낸 6년은 남달리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 20대 초중반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지치고 번아웃될 때가 많았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렇게 지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견뎠을까. 골프가 아닌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리면서 밸런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번아웃을 겪기 전까지는 골프밖에 몰랐다. 영화 보고, 책도 읽고, 음악 들으면서 골프 밖에서도 재미를 찾았다. 그랬더니 차츰 나아졌다. 취미 삼아 실내 암벽 타기도 했다. “골프가 힘들 땐 다른 걸 즐기면서 쉬었다. 20대 중후반에 터득한 이런 조절 능력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주에도 LPGA투어에서 함께 뛰는 동갑내기 절친 제니퍼 송(송민영)과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를 영화관에서 같이 재미있게 봤다며 한번 보라고 권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경험담을 풀어 놓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양희영이 지난달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를 옆에 두고 기념 사진을 남기고 있다. 양희영이 쥔 공엔 스마일 모양의 볼 마크가 그려져 있다. 서매미시=AP 뉴시스 

양희영은 메이저대회 한국 선수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도 남겼다. 1989년생 35세인 그는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몇 남지 않은 1980년대생이다. 최나연(1987년생)은 은퇴했다. 1990년생 유소연도 석 달 전 필드를 떠났다. 양희영은 어떨까. “힘들 땐 이제 그만하고 은퇴해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연습 라운딩을 할 때도 어떤 날엔 정말 재밌고, 어떤 날은 정말 싫은 애증의 느낌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골프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이걸 완전히 내려놓고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없다.” ‘골프 선수가 아닌 양희영’을 상상해 본 적도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캐디에게도 “혹시 내가 ‘힘들어서 골프가 싫다’고 하면 거짓말인 줄 알라”고 일러뒀다. 40세까지 선수로 뛸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웃으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지)은희 언니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몸 회복력과 집중력이 엄청나다.” 양희영과 나란히 LPGA투어 6승을 기록 중인 지은희는 세 살 위다.

대회 때 양희영이 쓰는 모자엔 이모티콘 스마일 모양이 새겨져 있다. 스폰서 로고 대신 넣은 것이다. 공에도 같은 모양을 볼 마크로 그린다. 양희영은 지금 스폰서 회사가 없다. 우리금융그룹 후원을 받다가 2022년 말 계약 관계를 끝냈다. 이때 일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양희영이다. 선수가 먼저 이러는 경우는 종목을 불문하고 드물다. 계약을 유지하려고 스폰서 측에 부상을 숨기는 선수들도 있다.

“그때 팔꿈치 부상이 심해 대회에 자주 못 나갈 것 같았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스폰서 회사에 폐 끼치기 싫었다. 쉬어야 할 때 쉬면서 맘 편하게 운동하고 싶었다. 그게 나한테도 낫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양희영 매니지먼트사였던 올댓스포츠도 조금 놀랐다. 이 회사 고재헌 부사장은 “스폰서 계약엔 대회 출전 비율 같은 게 담긴다. 그렇다고 그게 강제적이진 않고 선수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된다. 양 선수 성격이 깔끔하고 착해서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스마일 모양도 예쁘고 좋지만 이제 양희영은 새 스폰서 마크를 모자에 달고 싶어 한다. 한국 선수가 최근 LPGA투어에서 거둔 두 번의 우승 모두 양희영이 주인공이다. 지난 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가 양희영이다.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세계 랭킹을 5위까지 높여 파리 올림픽 출전 티켓도 손에 쥐었다. 지난달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진 25위였다. 올림픽 여자 골프엔 국가별로 상위 랭커 2명이 출전한다. 15위 이내 선수라면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한국은 고진영(3위)과 김효주(13위)가 상위 랭커였다. “올림픽 출전은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갈 수 있게 돼 너무 기쁘고 영광”이라고 했다.

양희영 가족은 국가대표 집안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에 각별한 자부심이 있다. 아버지는 카누 국가대표 선수였다. 어머니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창던지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자랑스러운 일산의 딸 양희영, 세계 제패를 축하합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닌 경기 고양시 일산엔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쾌거! 서산의 딸 양희영, LPGA투어 메이저대회 우승.’ 어머니 고향 충남 서산엔 이런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다. 양희영은 서산에서 태어났고 일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서산에서 나왔다. 주민등록증엔 일산이 주소로 돼 있다.

양희영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출전의 꿈을 8년 전 대신 이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갔다. 한 타 차로 4위에 그쳐 동메달을 놓쳤다. “그때 너무 아쉬웠다. 긴장을 많이 해서 막판에 만회하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에선 정말 후회 없는 경기를 해서 꼭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프로 골퍼 양희영(35)△1989년 충남 서산 출생

△2006년 아마추어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 우승 프로 전향

△2008년 LET 하이포페어아인스방크 독일오픈 우승

LET 스칸디나비아 TPC 우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데뷔

△2013년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

△2015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2017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20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

△2023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

△2024년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이종석 스포츠부장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