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상임위원이 잇단 막말-고함 논란 잘못 임명된 사람 하나가 기관 망칠수도 인권위 보호 위해 후진적 상황 해결해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기레기들이 들어와서 쓰레기 기사를 써 왔다.” “일본군 성노예제 타령할 거면.” “시끄러워 죽겠네.” “버르장머리가 없네.” “아주 천박한 저돌적 호위무사.”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이 한 말이라고 한다. ‘기레기’ ‘타령’ ‘버르장머리’ ‘호위무사’…. 술자리에서 나왔어도 공직자로서의 인격과 자질이 의심될 만한 단어 선정이다. 이런 표현들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회의에서 소리 내어 말했다니 공적 발화의 개념이 없나 싶어 신기하다.
자신의 일터인 국가인권위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그의 폭언은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자신의 상급자이기도 한 인권위원장의 말에 “망발입니다”라고 나섰다가 국회 정회시간에 삿대질까지 해대며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다 결국 퇴장당하고는 “국회가 구태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인권위는 인권 좌파들의 해방구가 된 실정”이라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누가 봐도 삿대질과 고함이 구태이다.
김 상임위원의 막말의 큰 틀은 “‘좌파’ ‘인권장사치’들이 나에게 부당한 시비를 건다”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진영 싸움도, 좌파와 우파의 대립도 아니다. 공적 발화의 상식과 토론의 규칙,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입법부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다.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든 공적 절차에서는 인신공격이 아니라 정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정도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지 않았던가. 또한 대화할 때는 유의미한 말을 해야 한다. ‘인권장사치’라는 말에는 발화자의 저급한 어휘력과 막연한 편견 외에 어떠한 정보값도 없다. 그저 듣는 사람을 얼굴 찌푸리게 하는 폭언일 뿐이다.
애당초 위원회 구조의 공적 기구는 생각이 다른 위원들이 토론하여 서로를 설득한 다음,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정리하여 판단하라고 만들어진다. 결정 과정에서 갈등이 있거나 비효율이 발생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참여한 공론장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함을 전제로 한다. 위원회에서 동료들에게 ‘버릇없다’ ‘내가 법조계 선배’ 같은 말이나 하다가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편협한 것이 아니라 발화자의 설득력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우리나라에만 특수한 기관도 아니다. 1992년 파리 원칙의 국제 기준에 맞춰 설립돼 지금까지 그 역할을 해내며 우리나라의 인권 보호와 의식 개선뿐 아니라 국격 향상에도 기여해 왔다. 시민으로서는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았으나 국제 기준에 비추어서는 상당히 잘 운영돼 높은 평가를 받아 온 자랑스러운 공적 기구이다.
“대통령이 인권위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하고 벌인 일 아닌가 의심된다”는 한 국회의원의 말에 그는 “망발”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대통령이 일부러 이상한 사람을 특정 기관 고위직에 임명해 나라를 망칠 마음을 먹었을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터무니없는 말까지 나올 만큼 잘못된 인선을 한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의견은 괜찮지만, 제도와 조직을 흔드는 무식과 몰상식은 안 된다. 각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할 수는 있어야 한다. 잘못 임명된 사람 하나가 국가기관을 완전히 망칠 수 있을까? 지금의 국가인권위를 보면 그럴 리 없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소란이 모두의 후진화를 야기하고 있는 지금 상황을,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