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높다고 재검이 나온 겁니다. 제가 명색이 의사이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안 하고 있었죠. 건강 검진 받는 사람들에게 주당 몇 번이나 땀을 흠뻑 흘릴 정도 운동하느냐고 설문하잖아요. 정작 제가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등산을 시작했죠.”
이범구 교수가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근처 정원에서 등산 스틱으로 마치 활을 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혈당 수치가 높아 2019년 등산을 시작한 그는 2022년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등했고, 지금도 주말마다 산을 타고 있다. 그는 “등산 스틱만 잘 써도 하체 부상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주기적이진 않지만 가끔 등산을 했었죠. 공기 좋고 풍광 좋은 산을 오르며 운동도 할 수 있어 좋았죠. 바로 산을 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수도권의 관악산과 북악산, 북한산 등을 올랐어요. 그리고 길병원 산악대장 이래성 행정팀장에게 등산을 배웠고, 100대 명산도 함께 올랐죠. 지난주에도 방태산(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어요.”
이범구 교수가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범구 교수 제공
등산으로 체력이 좋아진 그는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북알프스 트레킹까지 다녀왔다. 6~7시간 산행을 해도 거뜬하다. 등산은 그에게 많은 혜택을 줬다.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무엇보다 매년 건강 검진할 때 혈관 나이가 5~6년은 젊게 나와요. 그리고 체력이 좋아지니 수술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됐죠. 산을 오를 때 힘들지만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환자 수술을 잘 마친 것과 비슷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주말 등산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을까? 미국의학회지(JAMA)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말 전사(Weekend Warrior·격렬한 운동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국제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건강을 유지하며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WHO는 주당 75~150분 이상의 격렬한 운동이나 150~300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은 수영이나 달리기, 테니스 단식 경기, 에어로빅댄스, 시속 16km이상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중강도 운동은 시속 4.8km로 걷기나 시속 16km 이하 자전거 타기, 테니스 복식경기 등을 말한다.
이범구 교수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이범구 교수 제공
좋은 공기를 마시며 나무와 숲, 바위, 개울 등을 보며 산을 오르는 것 자체로 즐겁다. 이 교수는 “솔직히 가파른 산을 오를 때는 힘들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산밑에서 보는 것이랑 완전히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전국의 명산이 다 좋지만 계절 별로 끌리는 산이 따로 있다. 여름엔 계곡이 좋은 대야산, 가리왕산, 방태산 등이 좋다. 겨울의 설산은 한라산과 설악산이 환상적이다. 남덕유산도 좋다”고 했다.
이범구 교수가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근처 정원을 걷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하산할 때는 체중의 5~6배의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무릎과 발목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죠. 특히 나이가 들어서 등산을 시작할 경우에는 관절 부위 근력이 떨어져 있어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낮은 산부터 올라 하체 근력을 키운 뒤 높은 산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범구 교수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범구 교수 제공
이 교수는 관절염이 심한 경우가 아니면 등산을 권한다. 그는 “등산하게 되면 특히 허벅지 근력이 아주 좋아진다. 근력이 좋아지면 관절염을 예방할 수 있고 관절염이 있어도 덜 아프다”고 했다.
이범구 교수가 산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범구 교수 제공
“함께 하면 서로의 페이스를 맞추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한번은 친구들이랑 산행을 하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가슴이 답답해 내려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당황했죠. 과거엔 혹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몇 명씩 어울려 다녀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산악구조대도 잘 갖춰져 있고, 특히 등산앱이 안전까지 책임져 주기 때문에 혼자 산행을 해도 큰 어려움이 없어요.”
이 교수는 매일 1만5000보 이상 걷는다. 퇴근한 뒤 서울 집(용산) 근처 한강 공원을 1~2시간 걷는다. 병원(인천 남동구) 출퇴근도 가급적 전철을 이용한다. 그는 “출퇴근 시간에 막혀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전철을 타면 더 많이 걷게 된다”고 했다. 등산으로 건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생활 습관이다.
이범구 교수가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근처 정원에서 포즈를 취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