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평등’ 내세운 마오주의 그 안엔 폭력-권위주의 모순… 대학살-무장단체 활동에 영향 ◇마오주의 전 세계를 휩쓴 역사/줄리아 로벨 지음·심규호 옮김/792쪽·4만3000원·유월서가
오늘날 중국은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슈퍼 파워’다. 이에 비해 마오쩌둥 시대(1949∼1976년)의 중국은 왜소해 보인다. 2000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낸 대약진 운동(1961∼1962년)이나 학생이 스승을 조리돌림하던 문화대혁명(1966∼1976년)이 우리에겐 이 시대 중국의 대표 이미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던가.
영국 런던대 중국 현대사 전공 교수인 저자는 1950∼70년대 중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그 핵심 수출품은 ‘마오쩌둥주의’였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수억 권의 마오 어록을 해외에 전파했고 마오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에게 돈과 무기도 지원했다. 마오의 중국은 제3세계를 넘어 일부 유럽인과 미국인에게까지 ‘세계의 모델’이었다.
국제 마오주의의 가장 큰 공헌자는 ‘중국의 붉은 별’ 저자인 미국인 에드거 스노였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마오를 인류 평등을 주창하는 민족주의자로 묘사했다. 러시아의 반나치 빨치산도, 필리핀 게릴라도, 인도의 반영(反英) 혁명가도 그의 책에 빠져들었다.
책의 12개 장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4∼11장은 1965년 인도네시아 마오주의자들에 의한 대학살, 1970년대 인도차이나 공산화와 크메르 루주의 대학살, 페루의 마오주의 반군 ‘빛나는 길’, 선거로 권력을 차지한 네팔의 마오주의 정당 등 세계에 수출된 마오주의의 결과들을 탐색한다. 서구 세계의 괴짜들에게도 마오주의는 매력적이었다. 서독의 적군파나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같은 무장단체들이 이 이념을 따랐고 1968년 서유럽과 미국의 히피 문화혁명에도 마오주의가 영향을 주었다. 사르트르를 비롯해 알튀세르, 푸코 등 영향력이 큰 지식인들이 마오의 이념에 동조했다.
오늘날의 중국이 마오주의를 대하는 모습은 모호해 보인다. 과거로 돌아가기를 외치는 시위는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거대한 마오의 초상은 오늘도 톈안먼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오와 그의 전략 및 정치 모델은 중국 공산주의의 정당성과 그 기능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당대의 국내 정치적 모순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마오의 국제적 야심이 이제 부활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 원제 ‘Maoism: A Global History’(2019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