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크(DULK)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5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사무소벽면에 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5/뉴스1 ⓒ 뉴스1
“저는 부모님을 따라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신 길에서 예술을 발견했고, 덕분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보는 예술은 제 인생을 바꿨죠.”
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그라피티 작가 존원은 “바쁜 도심이 아닌 자연과 여유가 있는 신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기대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덜크, 포르투갈 작가 빌스 등이 전남 신안군 압해도의 ‘그라피티 아일랜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덜크는 압해읍사무소 벽면에 달랑게, 저어새 등 신안 갯벌의 동물을 담은 그라피티를 이날 공개했으며, 존원은 6일부터 지역 공공임대 주택 벽면에 작업을 시작했다.
● 곰리, 터렐 참여 ‘1섬 1뮤지엄’
‘1도 1뮤지엄’에는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해외 유명 작가가 참여한다. 터렐은 노대도에, 엘리아손은 도초도 대지의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신안군에 따르면 엘리아손의 작품은 지면 아래로 반원형 모양의 굴을 파고 바닥 면에 빛을 반사하는 1100여 개의 조각을 채워 태양 빛에 따라 지면 위로 다른 반영이 보이는 형태다. 엘리아손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선보인 인공 태양이 가장 유명하다.
비금도 해변에는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그는 인체 형태를 단순화한 조각을 야외 공간에 놓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은 가로 110m, 높이 25m, 폭 35m에 달해 아시아 최대 규모다.
완성된 프로젝트로는 암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에 맞선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작가가 연구하고 그 결과를 오래된 농협 창고 벽면에 그렸다. 이곳 전시는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후속 전시로 이어졌다.
신안군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건 사정이 있다. 신안군은 올 3월 기준 인구 3만8191명 중 고령자가 40%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221위(2023년). 박우량 신안군수는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려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며 “섬에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긍심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예술을 통한 관광 활성화로 젊은 세대의 유입을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것. 다만, 지역 관광지 수준을 넘어서려면 해외 유명 미술가의 알려진 작품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태도 소작쟁의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는 “해외 작가 작품은 유럽에서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좋은 작품은 여기서만 볼 수 있다”며 “작가 레지던시 건립, 지역 맥락을 담은 작품 전시 등 한국과 지역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안=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