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 이 헌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핵심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 조항을 바라보는 내 감정은 달라졌다. 법대 학부생 시절에는 이 조항 앞에서 무안했다. 표현의 자유를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하고 차가워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는 이 조항이 든든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이 내 밥벌이를 지켜주는 근거로 느껴졌다. 작가로 사는 요즘에는 이 조항이 두렵다. 절제된 문장 속에 웅크려 들끓는 단어가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책임’이다.
나는 조직 사회의 부조리, 정경유착, 노동문제 등 사회적인 주제를 소설로 많이 다뤄 왔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자주 경고음이 울렸다. 기자 시절에는 내 미숙함을 이해하고 선을 그어주는 데스크, 그런 나를 보호해 줄 조직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혼자 결정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소설로 다룰 수 있는 한계에 관한 고민은 당연한 일상이 됐다. 한 번 세상 밖으로 나간 글은 거둬들이기 어려우니까 민감한 내용일수록 근거와 논리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설의 영향을 받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최근 소설의 사생활 침해 문제가 공론화돼 문학계가 시끄러웠다. 무엇을 쓰든 자유이지만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는 본인 책임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표현의 자유다. 소설은 누군가의 삶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그저 소설일 뿐이다. 이런 생각이 과도한 자기검열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설이 그런 삶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신념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니 말이다. 그만한 결기로 작품을 쓴 작가라면, 난감한 상황이 왔을 때 창작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는 일도 없을 테다.
정진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