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 청원 120만… 野 충성파들 ‘으름장’ 불발 땐 역풍… 이재명은 입도 뻥끗 안 해 용산도 ‘해볼 테면 해보라’ 마이웨이 회귀 그렇게 지지율 방치 땐 ‘방어벽’ 얇아질 뿐
정용관 논설실장
요즘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는다면 ‘탄핵’이다.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검사 탄핵, 인권위원 탄핵…. 하도 많이 듣다 보니 “탄핵이 뭐 별건가” 하는 내성(耐性)이 생길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년 동안 13번의 각종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탄핵은 본래 ‘일반적’ 절차로는 중대한 위법 행위를 저지른 고위 공직자에 대한 처벌이 어려울 때 취하는 ‘특수한’ 조치다. 그러나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 일반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연루된 여러 의혹 사건을 수사한 현직 검사들에 대한 탄핵 발의는 실로 압권이었다. ‘만취 대변’ 등 탄핵 사유가 황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식의 ‘방탄 탄핵’으로 법치(法治) 자체를 희화화하고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일까지 벌일 것이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충성파들에겐 법치 파괴 우려와 같은 공적(公的) 인식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검사 탄핵 발의는 곧 이 전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에 대한 유무형의 겁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법리스크의 시간을 지체시키는 게 근본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올 초 이 전 대표에 대한 재판을 지연시키던 판사가 사표를 낸 적도 있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박근혜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란 경고와 엄포가 단순한 레토릭으로 들리지만은 않지만,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볼 대목은 있다. 채 해병 사건 외압 의혹, 명품백 의혹, 전쟁 위기 조장, 일제 강제징용 친일 해법 강행,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방조 등을 쭉 열거한 해당 청원의 탄핵 요건이 허술하다거나 청원에 동의한 이들이 대부분 개딸 혹은 강성 당원일 것이라는 얘기는 논외로 치자. 이 전 대표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꽉 다물고 있을까.
탄핵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것과 이를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 얼핏 비슷한 상황 같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여야가 손잡았던 그때와 달리 보수 진영엔 ‘박근혜 학습효과’가 남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배신 프레임’이다. 더욱이 이 전 대표는 170석 야당의 실질적 수장이다. ‘변방의 장수’로 앞장서 “박근혜를 끌어내리자”고 외쳐 댔던 그때와 달리 잃을 게 많다. 탄핵 궤도에 올라탔다가 일을 그르칠 경우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 무모한 도박에 섣불리 나서진 않을 거란 얘기다. 물론 이 전 대표는 갑갑한 상황이다. 내심 탄핵 시계를 앞당기고 싶겠지만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선거법 등 1심 판결 여부에 따라 내부 반란 세력이 준동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제1당 대표라는 철갑을 다시 챙겨 입고 탄핵 여론 추이를 살피며 집권 세력의 균열 가능성을 엿보는 게 그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용산 핵심부에선 이 전 대표가 대통령 탄핵 수순을 밟을 것으로 단정하고, 오히려 정국 반전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정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른바 노무현 탄핵 역풍 모델이다. 어차피 손을 내밀어 봤자 결론은 탄핵 추진이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총선 참패 후 잠시 협치 탐색이 이뤄지는 듯하다가 다시 마이웨이의 강 대 강 기조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이재명은 바보가 아니다.” 그를 직접 겪어 본 사람들의 얘기다. 상대를 얕잡아 보면 오판하게 된다. 대한민국엔 요즘 권력자들을 위한 두 개의 놀이공원이 있다. ‘용산랜드’와 ‘여의도랜드’다. 용산 권력은 그들만의 놀음이 한창이고 여의도 권력은 호시탐탐 진공 태세를 갖추고 있다. 태블릿PC 같은 휘발성 높은 사건이 터져 나오고 국정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고 대통령과 여당은 자중지란의 내부 쌈질만 벌이면 어찌 될까. 여당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난데없는 ‘여사 문자 소동’은 불길한 징후다. 탄핵 게임은 시작된 것도 끝난 것도 아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진짜 게임은 누가 더 민심의 성채를 튼튼하게 하느냐다. 그 점에서 제2부속실 설치 등 민심을 다독이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용산이 참 이해하기 어렵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