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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필수의료 개선책 미흡… 2000명 늘려도 1800명은 인기科 쏠릴것”

입력 | 2024-07-08 03:00:00

[의료공백 5개월, 정부에 묻는다] 〈3〉 20여년 필수의료 현장서 사직… 권순길 前 충북대병원 교수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대책, 美선 50만원 받는 진료비 수가를
우린 5만원서 10만원 주겠다는 격
수도권 의대, 교수 확충 나서면서 지방 필수의료 붕괴 가속화할 것”



“정부의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으로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며 사직한 권순길 전 충북대병원 신장내과 교수. 청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충북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에는 벌써 몇 년째 전공의가 없습니다. 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패키지로는 지방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어렵습니다.”

권순길 전 충북대병원 신장내과 교수(52)는 지난달 30일자로 21년간 재직했던 충북대 의대를 떠났다. 그는 1991년 충북대 의대에 입학해 전임의(펠로)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지역 필수의료 현장을 지켜왔다.

권 교수는 5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의대의 빈 회의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의료공백 사태로 대학병원을 떠난 의대 교수가 언론과 실명 인터뷰를 가진 건 처음이다.

● “필수의료 패키지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는 각 대학에 의료공백 상황을 감안해 의대 교수가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라고 한 상태다. 권 전 교수는 대학 본부에 거듭 요청한 끝에 결국 명예퇴직 형태로 사직서가 수리됐다. 권 교수는 “폭주하는 정부 정책을 막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떠나기로 했다. 4배로 늘어나는 학생도 제대로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며 정부의 의료개혁이 지역 필수의료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먼저 “최근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미국에서 50만 원 받는 진료비를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로 5만 원 주다가 10만 원 주겠다는 정도라 현장에서 크게 와닿지 않는다”며 “필수의료 패키지로는 필수과 외면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증 심장질환, 고위험 신생아 등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었던 분야 수가를 2, 3배 높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여전한 의료 소송 리스크도 젊은 의사들이 필수과를 외면하는 이유다. 산부인과 전문의 사이에선 지난해 7월 분만 중 뇌성마비가 온 아이 부모에게 1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게 화제가 됐다. 권 교수는 “의사들이 과도한 사법적 부담을 지는 판례가 쌓이는 것이 문제”라며 “필수의료 살리기는 사법 리스크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전 교수는 의대 증원이 이뤄지면 부족한 필수과 의사가 늘어날 것이란 정부의 이른바 ‘낙수효과’ 논리에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원을 2000명 늘리면 그중 1800여 명은 성형외과 등 인기과로 쏠릴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충북대병원의 경우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 전에도 소아청소년과는 레지던트 정원 12명 중 3명, 산부인과는 8명 중 5명만 충원됐다고 한다.

● “의대 교수 수도권 쏠림 막기 어려워”

지방의 경우 필수의료 공동화 가능성이 더 크다.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 중인 대형 병원들과 정원이 대폭 늘어난 수도권 의대에서 경쟁적으로 교수 확충에 나서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 전 교수 역시 “그만둔 후 수도권 대학병원 여러 곳에서 이직 제의가 있었지만 내 제자를 포기하고 나왔는데 다른 학교 학생을 가르칠 수 없어 거절했다”고 했다.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에서도 올 2월 의료공백 사태 발생 후 전체 교수 555명 중 33명(5.9%)이 병원을 떠났다.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정부는 지방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지방 필수과 교수 이탈이 가속화되는 정반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