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은 넓은 의미로 역경(易經)과 역전(易傳)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역경(易經)은 괘사와 효사를 적어 놓은 것이다. 경(經)은 공자의 산정(刪定)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텍스트다. 유교 입장에서는 한 글자도 고칠 수도 없다. 오로지 이에 대한 주석과 이해를 돕기 위한 글만 있을 뿐이다. 성경에서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역전(易傳)의 ‘傳’은 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후대 학자들이 경을 다양하게 나름대로 해석하여 저술한 책들이다.
주역은 원래 점치는 책에서 출발했으나 역전의 해석이 더해지면서 심오한 철학적 저술이 되었다. 좁은 의미의 주역 즉 역경에는 64괘 각각의 괘에 대해 괘사를 달고 있다. 괘 전체의 내용을 설명하는 문구다. 그리고 한 괘에는 6개의 양효 음효가 있는데 각각의 효에 대한 설명이 있다. 괘사 1개, 효사 6개 모두 7개의 문장이 하나의 괘에 대한 설명을 이룬다.
이 문장들은 지극히 짧다. 예컨대 건괘의 괘사는 ‘元亨利貞’이다. 처음 효 즉 초구의 효사는 ‘潛龍勿龍’이다. 모두 이런 식이다. 매우 추상적이다. 추상적이란 말은 모호하다는 뜻과 함께 다양한 해석의 길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우주 만물, 인간 세상의 원리를 64개의 괘로 설명하려 하니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元亨利貞’에 대한 견해만으로 논문 한 편, 책 한 권이 거뜬히 나올 정도다.
이런 점술 서적 역경이 동양 최고의 철학서, 유교 경전 중에서도 최고의 경전, 도교 불교는 물론 개인의 운명을 사주팔자로 추산하는 명리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전으로 자리 잡은 것에는 역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전을 십익(十翼)이라고 부른다. 역경의 이해를 돕는 10개의 글이란 뜻이다. 역전 즉 십익을 합쳐 넓은 의미의 ‘주역’으로 부르기도 한다.단전 상 하편, 상전 상 하편, 문언전, 계사전 상 하편,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등 10편이다.
문제는 이 역전을 ‘누가’ ‘언제’ 지었는가이다. 이에 대해 ‘공자’의 저술이라는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이 대립해왔다. 본격적인 학술 서적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주역해설서는 대부분 아무런 설명없이 역전의 저자를 공자로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간단한 주역해설 글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기존 주장을 아무 생각 없이 베껴서 올린 것들 많다.
우선 공자의 저술임을 암시하는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역은 상경과 하경 2편과 공자가 지은 십익 10편이 각각 따로 책이 되어 있었다”(주역전의대전 周易傳義大全)
“공자가 만년에 역을 좋아하여 단전, 계사전, 상전, 설괘전, 문언전의 차례를 매겼다” (사기, 공자세가)
이 문장들로 공자와 주역이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역전의 저자를 공자라고 인식하게 만들어왔다. 여기에 『주역의 탄생』은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현대 학자들의 더욱 철저한 고증은 역전은 대부분 전국 시대에 쓰이기 시작했고, 또한 한 사람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졌으며 역전의 여러 편이 한나라 초기에 완성된 것이라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 우선 공자의 적통임을 자임하는 맹자에게서 주역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전국 시대 순자 역시 易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역전은 음양론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그런데 이 음양론은 춘추말기에 활동한 공자에게서 나타날 수가 없다. 음양 개념은 춘추시대 다음인 전국시대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역경에는 강유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음양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 학자들은 이런 사상사의 흐름에서 역전은 전국시대에 탄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대세다.
물론 역전을 공자가 지었다고 주장하는 현대 학자들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공자가 지었고 공자 이후의 제자들이 평상시 공자의 말을 기록한 부분도 있어서 문장들이 완전치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십익 가운데 계사전이 가장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태극, 음양의 개념은 진한 교체기에서 형성되기 시작해 한 나라 무제 때 완성되기 때문에 공자와는 너무나 먼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다.
결국 『주역의 탄생』은 “공자와 주역은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된다. 공자가 역을 읽어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 구절은 공자를 신화화하는 동시 주역의 권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현대학자들은 말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공자의 권위를 빌리기 위해, 공자가 역경을 산정하고 역전을 지었다는 말이 만들어졌고 전해지지만 반대로 공자의 저술이 아니라고 해서 역경과 역전의 가치가 떨어진다고도 볼 수 없다. 두 가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