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 총선 2차(결선) 투표에서 극우 정당이 승리할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좌파 연합이 깜짝 승리를 거두며 대반전을 이뤄냈다. 중도와 좌파 연합이 막판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고 유권자들은 43년 만에 높은 투표율로 결집한 결과,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치러진 1차 투표 때 1위를 차지했던 극우 정당이 결국 3위로 밀려났다. 극우를 저지하기 위해 중도와 좌파가 협력하고, 시민들도 적극 정치에 참여하는 ‘공화국 전선(front républicain·프롱트 레퓌블리캉)’이 발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7일 실시된 총선 2차 투표 집계 결과 577석의 하원 의석 중 중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182석을 차지해 제1당에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당 르네상스가 이끄는 중도 성향 범여권 ‘앙상블’은 168석으로 2위,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은 143석으로 3위에 올랐다. 프랑스 제5공화국을 설립한 샤를 드골과 니콜라 사르코지 등 여러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통 보수당인 ‘공화당’은 45석으로 4위를 차지했다.
● 1차 투표 뒤 후보 218명 중도포기 단일화의 힘당초 프랑스는 2022년 6월 총선을 치렀기 때문에 5년 뒤인 2027년 새 의회를 구성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이 르네상스(14.6%)의 두 배가 넘는 31.5%의 지지율로 압승하자 의회를 전격 해산했다. 당시 그는 “선거로 (유권자들의) 분노가 표출됐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 없다”며 국민의 재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RN이 기세를 몰아 2027년 대선에서 더욱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프랑스 총선은 1차 투표에서 선거구별 등록 유권자 25% 이상의 표를 얻고 실제 투표 총합의 50% 이상을 얻어야 당선이 확정된다. 이런 후보자가 없는 선거구는 12.5% 이상 득표한 후보자만 2차 투표에 진출해 다수 득표자로 당선자를 가린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 득표율은 RN(33.2%), NFP(28.0%), 범여권 앙상블(20.8%) 순이었다. 1차에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진 선거구는 75곳이었고, 이중 38곳에서 RN이 승리했다.
극우가 의회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NFP 후보 130명과 앙상블 후보 82명 등 총 218명은 2차 투표 입후보를 포기해 다른 후보와 단일화를 이뤘다. RN의 경쟁자에게 표를 몰아주는 반(反)극우 연대를 추진한 것. 유권자들도 1981년 이후 43년 만에 최고치인 59.7%의 투표율로 극우 저지에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좌파와 중도가 합심해 결선투표 후보자를 단일화한 반(反)극우 전략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평했다.
● “전투적 동거정부 우려”RN의 집권은 좌절됐지만 극우 돌풍이 사그라든 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RN 의석수가 88석에서 143석으로 급증해 ‘변방의 왕따’였던 RN이 대중에게 존중받는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고 짚었다.
이번 총선에선 어느 정당도 과반인 289석을 얻지 못해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 때처럼 ‘상 마조리테 압솔뤼(sans majorité absolue·절대적 다수당이 없는) 의회’가 구성될 상황이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다수당 대표를 총리로 지명하는 편이다. 제1당이 된 NFP는 마크롱 대통령에 자신들에게 정부 구성권을 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투표 당일 밤에 사의를 표한 가브리엘 아탈 총리에게 8일 “국가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 총리직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아탈 총리가 물러나고 강한 좌파 성향 총리가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마크롱 대통령은 남은 3년 임기 동안 이질적 총리와 일하는 ‘전투적 코아비타숑(동거 정부)’을 경험해야 한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두번의 투표가 끝났지만 정부 구성을 위한 3차전은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