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사회부 차장
인생을 바꿀 기회는 누구에게나 세 번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배우자로 누굴 만나느냐, 그 배우자와 어떤 아이를 낳느냐. 이 중에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배우자 한 명뿐이다. 주로 기혼 꼰대들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그만큼 결혼 상대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똘똘한 한 채’가 답이 돼 버린 요즘 세상에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 중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초고가 아파트 얘기다. 이곳 입주민들은 올해 4월 결혼정보회를 결성해 첫 정기모임을 가졌다. 입주민 당사자와 자녀 등 가족을 대상으로 가입비 10만 원에 연회비 30만 원을 받고 맞선을 주선해준다고 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반포동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이곳 전용 84㎡는 올해 4월 4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요즘같이 초저출산 시대에 이곳에 사는 외동딸과 외동아들이 만난다면 어떨까. 이들이 양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게 될 수십 년 뒤 ‘똘똘한 두 채’는 얼마가 돼 있을까.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로맨스를 믿고 있지만, 강남 아파트 입주민과 결혼하는 시골 청년은 가뭄에 콩 나듯 할 것 같다. 개천에 나는 용보다 드물지 않을까.
청년들의 로맨스를 파괴하고 있는 건 정부의 똘똘치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 때 가만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된 청년들은 또다시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영끌’ 매수에 나서고 있다.
말려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라’며 판까지 깔아줬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4∼6월 석 달간 15조 원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 1%대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시 5개월 만에 6조 원 가까이 신청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 금융당국은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2단계 시행(7→9월)을 불과 엿새 앞두고 두 달 연기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연착륙을 위한 조정이었다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혼란을 자초한 실책을 반성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