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2년전 폭우 악몽 반지하 동네, 10곳중 4곳 아직 물막이판 없다

입력 | 2024-07-09 03:00:00

2022년 폭우 4명 숨진 관악-동작
반지하 60채중 57채에 주민 거주
“이사가고 싶어도 돈 없어 못떠나”
서울시 차수판 설치 61% 그쳐… “집값 하락” 집주인이 반대하기도



8일 서울 관악구 일대 한 반지하 가구의 창문에 물을 막아주는 차수판이 없다. 이 지역에서는 2022년 8얼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창문으로 흘러 들어온 폭우에 익사했지만, 2년이 지난 현재도 약 40%의 반지하에는 차수판이 없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 사는 이모 씨(50)의 반지하 집은 2022년 8월 8일 당시 폭우로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는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옆 골목에 살던 40대 자매와 13세 딸 등 일가족 3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당시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1명이 반지하 주택에서 폭우로 숨졌다. 2년이 지난 7일 이 씨는 동아일보 취재팀을 만나 “올해도 비가 시작됐는데 우리 집은 여전히 차수판(물막이판)이 없다”며 “전기밥솥 등 집기를 전부 선반 위로 올려놨다”고 말했다.

8일 충청 등 전국 곳곳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장마가 시작됐지만 침수 취약지인 ‘반지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년 전 폭우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일대 반지하 60채를 8일 취재팀이 직접 살펴본 결과 57채(95%)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 관악-동작 일대 반지하, 대부분 주민 거주


이 지역에서 취재팀이 만난 반지하 거주 주민들 중 대다수는 2년 전에도 집이 잠기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 씨는 “그때 장판, 이불, 살림살이가 모두 다 젖어서 버렸다”며 “올여름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2022년 폭우 피해로 반지하에서 4명이 숨지자 “반지하를 없애겠다”며 각종 주거, 이사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상당수 반지하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관악구 반지하 방에서 7년을 거주했다는 정모 씨(52)는 “이사를 가고 싶지만 반지하가 아닌 곳은 보증금이나 월세가 여기보다 비싸서 못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공공임대 주택으로 이사하면 보증금과 이사비를 지원하는 ‘주거 상향 이주 지원’ 정책을 당시 내놨었다. 7일 기준 서울시가 ‘침수 위험 가구’로 분류한 2만8439채 중 2022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반지하에서 공공임대로 이사한 가구는 5527채(19%)에 불과하다. 동작구 상도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2년 전 수해 사고 직후에는 반지하 세입자가 많이 빠졌지만 조금 뒤 다시 찾는 사람이 늘었다. 방값이 싼 만큼 어려운 계층이 많이 찾는다”며 “지금은 공실이 거의 없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반지하 주민에게 이주를 권해도 젊은층은 직장에서 멀어진다며, 고령층은 오래 살았던 곳을 떠나기 어렵다며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반지하에서 일반 지상 주택으로 이사하면 매달 월세 20만 원을 지원하는 바우처 사업도 실적이 저조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신청 대상을 ‘침수 우려 가구’에서 ‘전체 반지하 가구’로 확대하고, 지원 기간도 2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신청 가구는 2022년 12월부터 이달 8일 현재까지 967채에 그쳤다. 지원금을 감안해도 보증금이나 월세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동작구 반지하에 거주하는 최모 씨(78)는 “보증금 500만 원이 전 재산이다. 이곳 말고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 반지하 10곳 중 4곳 아직도 차수판 없어


당장 올해 폭우를 막아야 할 차수판도 설치하지 못한 반지하가 많은 실정이다. 7일 취재팀이 둘러본 관악구, 동작구 일대 반지하 입주 건물 57채 중 물막이판 등 침수 대비 시설이 설치돼 있는 곳은 36곳(약 63%)이었다. 나머지 21곳(37%)은 도로에 물이 차오르면 그대로 창문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관악구 신사동이 10곳, 동작구 상도동이 11곳이었다. 2년 전 사망 사고가 발생한 신사동 반지하 건물에도 여전히 차수판이 없었다.

서울시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침수 우려 가구를 조사해 2만4842채를 대상으로 차수판 설치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설치된 곳은 1만5259채(61.4%)에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차수판을 무료로 설치해 준다고 해도 집주인들이 ‘침수 위험 가구’로 낙인이 찍혀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침수 전력이 있는 지역들 위주로 물막이판 설치를 적극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수 피해 지역이 여전히 ‘침수 위험 지구’로 지정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침수 위험 지구로 지정되면 5년 단위의 중장기 정비계획이 세워지고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예산 지원도 받는다. 하지만 현재 서울 내에서 지정된 곳은 종로구 1곳, 서초구 2곳, 강서구 1곳이 전부다. 사망 피해가 발생한 관악구와 동작구는 지정되지 못했다. 최명기 한국기술사회 안전조사위원장은 “침수 대비 시설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송진호 기자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