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식사하셨어요?”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지인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질문인 것 같다.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수많은 가이드북들에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굳이 책을 통하지 않고도 한국에 1주 정도만 있어도 금방 체험하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렇게 음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대화가 시작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영국은 날씨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영국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뭘 하기 참 좋은 날씨네요(Nice weather for it)”라고 인사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무엇”을 하기 좋다는 것인지 특정하기는 힘들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통계 수치는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의 단적인 예다. 만약 여러분이 영국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면 나는 한국이 영국보다 더 강수량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반박할 수 있지만, 사실상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양측의 주장이 모두 맞을 수 있다. 한국은 연간 비 오는 날이 평균 106일인 반면 영국은 159일로 한국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많지만, 강수량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1440mm로 영국의 1100mm보다 30%가량 더 많다. 영어에는 비 오는 날을 대비하여 목돈 마련하기(saving for a rainy day)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나라의 목돈 마련 상황을 비교해 보면 연간 강수량을 기준으로 할지, 연간 강수일을 기준으로 할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한국에 20년 동안 살면서 한국도 기후변화가 분명히 왔다는 생각이 매년 더 강하게 든다. 물론 여전히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지만, 겨울은 왠지 점점 더 따뜻해지는 느낌이고 봄과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으며 여름의 장맛비는 점점 더 거세지는 느낌이다.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니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나 벚꽃 축제 같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던 유명한 이벤트나 여행 다큐, 드라마의 배경들이 사라지거나 바뀌게 될 염려가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점점 더 따뜻해지는 겨울 날씨 때문에 우리가 즐겨 하던 겨울스포츠도 이제 점점 희귀한 일이 돼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전엔 싸고 맛있게 먹던 사과 가격이 올라 자주 사먹지 못하는 과일이 될 것 같아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기후학자들은 이러한 날씨의 변화로 우리의 생활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환경정책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달라져 갈지를 추측하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산을 들고 레인코트에 중절모를 쓴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반바지 차림의 선글라스를 쓴 해변의 아저씨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