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즐로 호머는 19세기 말 미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중 한 명이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뛰어난 재능 덕에 삽화가를 거쳐 화가가 되었다. 그는 남북전쟁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 생생한 전쟁화로 이른 나이에 큰 명성을 얻었지만, 진짜 그리고 싶은 그림의 주제는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찾았다. 바로 바다와 어부였다. 인정받는 역사화가였던 그는 왜 갑자기 바다를 그리는 풍경화가가 된 걸까?
‘안개 경고’(1885년·사진)는 호머가 그린 가장 유명한 풍경화 중 하나다. 1880년대 초 영국 북동부의 바닷가 마을에 2년간 머물며 어부를 그리기 시작한 호머는 1883년 미국으로 돌아와 아예 어촌에 정착했다. 마흔일곱 살 때였다. 1884년 메인주의 황량한 어촌 프라우츠넥에 작업실을 짓고 바다 그림에 몰두했다. 이 그림은 이듬해 그린 것으로 강인한 어부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탄 어부는 홀로 노를 젓고 있다. 고물(선미)에 놓인 커다란 넙치들을 보니 오늘 운수가 좋았던 듯하다. 하루 일을 마친 그는 수평선 위로 보이는 큰 배로 돌아가는 중이다. 한데 멀리서 짙고 거대한 안개가 몰려오고 있다. 바다는 거칠고 배는 파도 위에서 심하게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안개가 어부와 배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좀 더 빨리 큰 배에 닿으려면 잡은 고기를 다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과연 무사히 귀가할 수 있을까? 고기를 내어주는 관대함과 목숨도 빼앗을 수 있는 무서움, 화가는 이렇게 바다의 이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호머는 죽을 때까지 외딴 어촌에 살며 어부들과 자연을 관찰해 그렸다. 생존을 위해 매일 바다로 나가 싸우는 어부들의 삶이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보다 더 치열하다고 느꼈을 테다.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어부는 어쩌면 새로운 예술을 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예술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