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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훈상]텔레그램 뒤의 김 여사… 사과는 국민 앞에 해야

입력 | 2024-07-10 23:15:00

박훈상 정치부 차장



“비공식적 정책 결정 체제가 공식적 체제에 대해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문제 삼을 수 없을 만큼 ‘성역화’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집어삼킨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텔레그램 메시지 ‘읽씹’ 논란을 짚은 것 같은 평가다. 하지만 이 대목은 30년 전인 1994년 박승관 서울대 교수의 저서 ‘드러난 얼굴과 보이지 않는 손’에 나온다. 박 교수는 공식적 커뮤니케이션 기구를 ‘겉치레 장치’로 만들고 비공식적 기구를 통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30년 지난 지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비공식 소통 창구는 더 보이지 않는, 사적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올해 1월 김 여사가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인 한 후보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는 손이다. 1월 17일 당시 김경율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을 언급하며 김 여사 명품 디올백 수수 의혹과 관련한 사과 요구가 들끓었다. 이틀 뒤 김 여사는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 있다. 그럼에도 위원장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한 후보에게 보냈다. 한 후보는 답장하지 않았다. 6개월 뒤 논란이 되자 한 후보는 “실제로는 사과를 안 해야 되는 이유를 늘어놓은 문자였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김 여사는 주변에 ‘사과하는 순간 민주당이 들개들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는 보수 유튜버의 주장이 담긴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지 내용이 알음알음 추가로 공개되고 있지만 김 여사가 진정 사과 의지가 있었는지, 국정에 간여한 것 아닌지 등으로 논란이 확산되면서 “검건희 여사만 남은 전대판”이 되고 말았다.

‘댓글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의혹도 추가됐다. 사실이라면 음지에서의 여론 조작 시도는 범죄에 가깝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방식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블로그 등에 올린 게시글 수를 일일이 세가며 1인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 평가를 하는 것도 수준 이하다. 휘발성 강한,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메시지만 남발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정말로 사과 의사가 있었다면 훨씬 더 공식적 루트인 대통령실로 갔어야 됐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텔레그램 공개로 인한 논란이 처음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7월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보낸 일명 ‘체리 따봉’ 문자가 공개됐었다. 권 원내대표는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가 노출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국민은 드러난 얼굴로 소통하길 원한다. 비공개로 오간 텔레그램이나 SNS에 올린 동영상과 사진만으로 소통이라 하기는 어렵다. 한 후보는 최소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사과 요구를 했다. 그러나 김 여사의 사과 진정성은 주변에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로 추정이 가능할 뿐 명확하지 않다. 대통령 부인의 사과가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 잘 안다. 그것이 어려운 의사결정이기에 제2부속실을 만들어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