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은 ‘없다’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도, 않을 수도 있는 원리”
‘이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을 출간한 서울 성북구 청룡암 원영 주지 스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승려라면 누구나, 전국 모든 사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는다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서유기의 모델인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이 천축국에서 전래한 54구 260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불교의 핵심 사상이 응축돼 있어 어떤 불교 행사에서도 빼놓지 않는 경전 중의 경전이다. 최근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을 출간한 원영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주지)은 “지혜란 뜻의 ‘반야’는 일상에서 활용하는 소소한 지혜가 아니라 만물이 ‘공(空)’한 줄 아는 통 큰 지혜”라며 “모든 사람이 반야심경을 통해 얻은 지혜로 세상을 더 잘 품고, 멋진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말했다.
―만물이 ‘공’하다는게 무슨 말인지요.
“일체 만물에는 원인과 결과(연기·緣起)가 있지요. 하지만 고정된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의지하며 변합니다. 처한 조건이나 결과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단 한 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지 않기에 ‘무상(無常·상이 없다)’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은 ‘아무 것도 없다(無)’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또 무엇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원리를 담은 이치를 말합니다. 그 이치를 빌 공(空)으로 쓰기로 약속한 거죠.”
“하하하, 겨울에 귤나무를 베어 아무리 안을 찾아 본들 귤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그 나무에 귤이 없는 것인가요? 수확 철이 되면 주렁주렁 나오겠지요. 지금은 없으나 없다고 할 수 없는, 이것을 가리켜 ‘공’이라고 합니다. 햇볕과 물을 주고 농부가 잘 가꾸면 탐스러운 귤이 나올 테고, 그렇지 못하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볼품없겠지요. 색즉시공(色卽是空), ‘색(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공과 다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앞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에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출가하기 전인데, 저도 한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할 정도로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앞도 보이지 않는 절벽 길을 매달려 가는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험하게 걸었던 그 시간이 내 삶에 가장 힘을 비축했던 성장기였더라고요. 요즘 힘든 사람이 많고, 특히 젊은 세대는 더 그런데… 힘들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느끼는 것이지요. 결코 힘듦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지금이 한겨울의 귤나무인 순간일 뿐이죠.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분명히 바뀝니다.”
―반야심경을 이해하면 마음의 괴로움도 줄일 수 있다고요.
“예를 들어 상사가 인사를 안 받았어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겠죠. ‘내가 뭘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나한테 왜 저러지?’ 하며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괴롭겠죠. 근데 상사는 단지 딴생각 때문에 못 들은 것뿐일 수 있어요. 없는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에게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계속 쏜 거죠. ‘공’을 깊이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조건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도, 안 만들 수도 있는 게 ‘공’이니까요. 뛰어가서 더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테고,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없겠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