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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 너 죽어” 목만 내놓고 버티던 노모…아들이 급류 뚫고 구했다

입력 | 2024-07-11 17:15:00


11일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서 김중훈 씨(59)가 전날 어머니가 매달려 있던 기둥을 가리키고 있다. 뉴스1

대전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한 농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주민들이 고립됐다. 마을로 달려가 급류를 헤쳐 어머니를 구한 아들 김중훈 씨(59)는 당시를 떠올리며 오열했다.

김 씨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가 밤새도록 잠을 못 잘 정도로 시끄럽게 내렸다”며 “전날 새벽 (밖에) 나가보니까 사람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강물이 됐더라”고 밝혔다. 대전 지역에 거주하는 그는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진 않았다.

새벽에 형수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형수는 “어머님이 연락이 안 된다. (대피) 방송을 해서 다른 사람들은 대피했는데 어머님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전 소방구조대원들이 대전 서구 용촌동 마을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뉴스1

김 씨는 바로 어머니가 사는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로 향했다. 폭우로 인해 전날 오전 4시경 정뱅이 마을 앞 갑천 상류와 두계천 합류 지점 인근의 제방이 붕괴했다. 순식간에 급류가 마을을 덮쳤다. 27가구에 거주하는 30여 명의 주민이 고립됐다.

김 씨는 “마을에 도착하니까 둑이 터져서 물이 동네로 유입되고 있더라. 민물인데 태평양처럼 파도가 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둑에서 어머니 집이 보이는데, 처마 밑까지 물이 찬 상태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안 보이는데 ‘사람 살려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굴착기 기사인 김 씨는 굴착기를 끌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으나, 파도가 너무 세서 접근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굴착기를 버리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지난 10일 오전 소방구조대원들이 대전 서구 용촌동 마을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뉴스1

김 씨는 물살을 뚫고 수영하며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어머니 옆집이었다. 그곳에는 한 아주머니가 목까지 물에 잠긴 채 기둥을 잡고 있었다. 김 씨는 물에 떠 있는 수레를 이용해 아주머니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다시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옆집 아주머니를 구하는 사이 어머니의 ‘살려달라’던 외침이 사라졌다. 김 씨는 “어머니가 처마 끝 기둥을 잡은 채 버티고 계시더라. 엄마가 지쳐서 목만 내놓고…”라고 말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제가 어머니 쪽으로 가니까 어머니는 ‘너 죽는다, 오지 마라’고 하셨다”며 재차 흐느꼈다.

집중호우로 마을 전체가 침수 피해를 입은 대전 서구 용촌동에서 11일 주민들이 짐을 챙겨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김 씨는 “지붕을 타고 어머니 쪽으로 넘어갔다. 어머니 집 담이 어디 있는지 잘 아니까 (물속에 잠긴) 담을 잡고 발을 지탱할 수 있었다”며 “기운이 빠져서 어머니를 못 당기겠더라. 이때 소파 하나가 떠내려왔다. 소파를 이용해 지붕 위로 어머니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붕 위에 올려놨던 옆집 아주머니가 자꾸 미끄러지길래 ‘조금만 버티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119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를 대피시키고 보니, 두 분이 목만 내밀고 있던 공간이 10여 분 사이에 완전히 다 잠겨버렸다”며 “10분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마을에 고립됐던 주민 30여 명은 4시간여 만에 모두 구조돼 인근 복지관으로 대피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