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한산하다. 많게는 절반가량 진료와 수술이 줄면서 각 대학병원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동아일보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어렵게 시작했는데 적자가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라 병원 정상 운영을 못 하는 지경이 됐다. 당장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지원이 없으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 운영 정도의 축소 진료가 불가피하다.”(세종충남대병원 관계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에 병원 측은 정부와 지자체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병원 경영을 잘못한 탓”이란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지자체에서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한 금액은 1억 원 남짓에 불과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병원을 살리기 위해 지금보다 더 진료 축소를 해야 할 판”이라며 “여기에 응급실 의사들의 연봉 인상 요구까지 겹쳐 응급실 야간운영도 일주일에 5일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도 지방 대형병원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각 병원에 보낸 2024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인원 신청 안내 공문에서 전공의 사직 날짜에 대해 ‘병원과 전공의 당사자 간 법률관계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사직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6월 4일 이후 발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공의들이 원하는 대로 2월 사직이 인정되면 전공의들은 6월까지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에 소송을 걸 수 있다. 반면 6월 사직이 인정되면 2월부터는 무단이탈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반대로 병원이나 정부가 구상권 청구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냐에 따라 법적 논란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다.
최근 전국 수련병원장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는 못 찾았다고 한다. 사직 이후도 문제다. 복직하는 전공의는 소수에 불과할텐데 9월에 추가 모집을 할 경우 사직 전공의들이 수도권에 있는 5대 대형병원 본원이나 분원에 대거 지원할 수 있다. 이 경우 지방병원의 상황이 더 악화된다.
올 11월 진행되는 전국의대평가인증도 난관이 예상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인증을 못 받은 의대는 단계적으로 정원 감축, 모집 정지, 졸업생 의사 국가시험(국시) 응시 불가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 서남대가 의평원 인증을 못 받아 2018년에 폐교된 바 있다.
의평원은 국제 평가인증 기준에 준해 각 의대를 평가하기 때문에 기준을 임의로 낮출 수도 없다. 최근 교육부가 의평원 인증에 개입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고 허윤정 분당서울대병원 디지털헬스케어연구사업부 교수는 “의평원은 정부가 개입해 관리하는 기구가 아니라 전문적 영역에서 관리 운영하는 독립기구인데 교육부에서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대형병원의 위기는 한 병원의 위기가 아니라 의료공백에서 파생된 다양한 부작용이 집결돼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은 재난 수준에 대응하는 특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도의 틀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니 이제 발생 가능한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