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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년된 은행 흔든 빌 황의 몰락 “평생 감옥 위기”

입력 | 2024-07-12 03:00:00

美법원 11개 혐의중 10개 유죄 평결
3년前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로
글로벌 IB에 100억달러 손실 끼쳐





‘월가의 투자 천재’로 불렸지만 2021년 ‘아케고스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 빌 황(한국명 황성국·60·사진) 씨가 10일(현지 시간) 미국 법원으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의 배심원단 12명은 사기, 공갈 등 황 씨에게 제기된 11개 혐의 가운데 10개 혐의를 ‘유죄’로 평결했다. 올 10월 28일로 예정된 형량 선고 공판에서 그는 혐의별로 최대 20년형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이번 평결이 종신형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 씨와 함께 기소된 패트릭 핼리건 아케고스 최고재무책임자(CFO·47) 역시 사기, 공갈 등 3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받았다.

‘아케고스 마진콜’은 투자 천재로 불리던 황 씨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노무라, 크레디트스위스(CS)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부터 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약 70조 원)를 끌어들여 투자하다 이들 은행에 총 100억 달러의 손실을 끼친 사건을 말한다. 주가 하락으로 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마진콜)를 받게 되자 아케고스는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166년 역사의 스위스 은행 CS 또한 몰락했다. CS는 지난해 또 다른 스위스 은행인 UBS에 합병됐다.

미국 검찰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아케고스를 거짓으로 만든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집)’에 묘사했다. 금융 회사를 속여 거액을 차입한 뒤 이를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의 파생상품에 투자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통해 황 씨가 15억 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360억 달러 규모인 것처럼 부풀렸다고 봤다.

황 씨는 “그저 주식을 좋아해 매수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하루 반에 걸친 심의를 통해 그를 유죄로 평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황 씨는 평결이 낭독될 때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변호인 팀과 침착하게 악수도 나눴다.

황 씨는 고교 3학년이던 1982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쳐 1990년 현대증권 뉴욕법인에서 일을 시작했다. 월가의 거물 투자자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어 이후 승승장구했다.

NYT는 “큰 주목을 끌었던 이 화이트칼라 재판은 월가 은행들이 엄청난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황 씨에게 기꺼이 수십억 달러를 빌려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