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2024년 한국경제보고서’ “스펙쌓기 등 경쟁에 사교육비 증가… 합계 출산율 0.72명 인구절벽 초래 외국인 노동시장 견인할 개혁 필요… 中企 성장막는 보조금 제도 개선을”
‘황금 티켓(상위권 대학 입학)’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한국의 교육 현장이 학생들에게 ‘생사의 전쟁터(life-or-death battlefield)’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꼬집었다. 모든 청소년이 비효율적인 경쟁에 참여하면서 국가적인 낭비가 발생하고 아이를 키우는 비용까지 늘려 인구절벽을 초래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OECD는 1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는 2년마다 각 회원국의 경제 동향과 정책 등을 분석해 권고 사항을 내놓는다. 올해 보고서에선 인구 감소 대응과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등을 권고했다. OECD의 한국경제보고서에 인구 감소 대응이 전면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출생률이 그만큼 한국 경제의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 전쟁터 된 학교에 추락하는 출산율
OECD는 낮은 출생률의 원인 중 하나로 아이를 키우는 비용이 크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가구 처분가능소득의 10%에 해당하는 43만4000원이었다.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을 뜻하는 ‘황금 티켓 신드롬’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비효율적인 경쟁에 참여하지만 이 가운데 소수만이 승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한국의 대학생 10명 중 8명이 고등학교를 ‘생사의 전쟁터’로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비율은 미국(40.4%), 중국(41.8%), 일본(13.8%) 등보다 높다.
빈센트 코엔 OECD 경제검토국 국가분석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가장 낮아 이례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할 분야에서 ‘월드 챔피언’이 됐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탓에 스펙 쌓기 경쟁이 이뤄지고 있고 황금 티켓을 추구하면서 사교육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는 등 교육제도 손질에 나섰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런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허무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상위권 대학’ 졸업생은 ‘하위권 대학’ 졸업생보다 24.6% 정도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저출산이 심각한 수준인 만큼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욘 파렐리우센 OECD 한국경제담당관은 “한국은 일-가정 병행에 따른 대가가 너무나도 커서 상당히 큰 현금을 지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현금 지급 자체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통합적인 대책의 일부로 활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는 아낌없는 중소기업 보조금이 이들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쓴소리도 담겼다. 코엔 실장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거미줄 같은 (보조금) 지원 제도가 놀랍게도 1646개에 달한다”며 “소수의 프로그램으로 통합하면 국내 시장에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고 중소기업 성장을 장려할 수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지지 않도록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엔 실장은 최근 이어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장기적으로 새로운 세수 원천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은 10%로 OECD 평균의 절반을 소폭 넘는 수준”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OECD는 올해 한국경제가 2.6%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2%에서 2.6%로 큰 폭으로 상향한 5월 전망을 그대로 유지한 것인데, 이는 정부 전망치와는 같고 한국은행(2.5%)보다는 높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