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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한다면 몸값 높을 때… 여기서 끝난 사람은 저 회사도 안 뽑는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4-07-13 01:40:00

[이런 인생 2막]국내최대 헤드헌팅사 ‘커리어케어’ 신현만 회장
중장년 재취업, “눈높이 낮춰야 모두가 윈윈”
저출산고령화로 일손부족 우려
일하던 곳서 일하는 ‘계속고용’ 중요
단, 고용유연성 반드시 전제돼야
재취업 시장에선 전문성이 중요
미리미리 평생 커리어관리 필요




커리어 관리 및 헤드헌팅 전문가인 신현만 회장은 중장년의 안정된 재취업을 위해 눈높이를 낮추고 전문성을 무기로 삼아 미리미리 커리어를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중장년의 퇴직과 재취업에 대해 궁리하던 차에 언론계 선배인 신현만 회장(62)이 최근 낸 책 ‘레벨업 강한 커리어(세이코리아)’가 손에 들어왔다.

그가 운영하는 커리어케어는 국내 최대 규모의 헤드헌팅 회사. 50만 명분 인물 데이터를 운영하며 국내외 5000여 기업에 경영자와 핵심인재를 발굴해 추천해왔다. 이직과 전직, 재취업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또 ‘보통’ 중장년들의 원활한 재취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2일 서울 강남구의 커리어케어 사무실을 찾았다.


“헤드헌팅, 인재에 대한 안목을 제공하는 일”
1990년대 후반 어느 날, 헤드헌팅 회사를 취재한 신현만 기자는 퇴근 후 시험삼아 자신의 정보를 그 회사 홈페이지에 등록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모 통신사 비서실장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당신 이력을 보니 경제부 기자를 했고 비서실과 기획실에도 있었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으니 잘 맞을 것 같다’는 얘기였어요. 지금 연봉이 얼마냐고 묻길래 창피해서 ‘한 5000쯤 된다’고 둘러댔더니 그것밖에 안되느냐고 해요. 그 자리는 얼마쯤 받느냐고 물으니 그 시절에 1억 몇천을 말하더군요. 언론사가 참 적게 받는다는 걸 실감했지요. 하하.”

이때의 유쾌한 기억이 훗날 그가 헤드헌팅 사업에 뿌리를 내린 계기가 됐다. 1988년 창간한 한겨레신문 수습 1기. 십수년간 기자 생활을 한 뒤 신문사 자회사의 신사업 중 하나로 헤드헌팅을 도입했고 2년만에 독립해 커리어케어를 창업했다.

현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대규모로 성장했다. 업계에서 연간매출이 가장 크고(200억 원대) 정규직 근로자(150~200명)가 가장 많다. 다른 헤드헌팅 회사들이 헤드헌터들을 특수고용직(사업주와 개인간 도급계약)으로 운영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세를 보인다.

그로서는 이 일이 인재에 대한 안목을 제공하는 사업이란 점이 가장 끌렸다.

“헤드헌터는 기업과 사업, 사람을 알고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예요. ‘저 사람이 저런 재능이 있고 저런 역량이 되니 이 회사에 이렇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를 판단하는 거죠. 그러니까 헤드헌터는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국내 최대 규모 기업형 헤드헌팅회사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군요.

“물론입니다. 기업에 좋은 사람을 보내면 죽어가던 기업이 살아나기도 하죠. 2012년 일본항공(JAL)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파산 직전에 몰린 JAL에 ‘경영의 신’이라 불리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구원투수로 들어가 8개월 만에 소생시켰죠. 또 역량은 있는데 경력이 단절된 인재를 헤드헌터들이 ‘이 사람 믿고 써보시라’고 추천해 취업을 성사시키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 일에는 공익성이 있어요.”

소수정예 10여 명이 일하는 평판조회 전문부서 ‘씨렌즈’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다. 요즘 웬만한 고위직에 대해서는 무조건 평판조회를 하는 추세다.

“평판 조회는 데이터화할 수 없는 것들을 조회합니다. 리더십 스타일, 윤리성,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등이 대표적이죠. 이게 본인에 대한 인터뷰보다 정확할 때가 많아요. 예컨대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람을 회사가 조용히 덮고 퇴사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평판조회를 해야 그런 얘기가 나오죠.”

―평판조회를 받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나요.

“경험이 많은 분일수록 평판조회 요청에 잘 응해줍니다. 예를 들면 법무법인 핵심보직에 중수부장 출신을 뽑는 경우, 평판조회는 전직 검찰총장이나 지검장에게 물어봐야 하죠. 이런 정도 위상에 있는 분들에게 ‘저희가 지금 평판 조회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을 걸면 다 응해줍니다. 때에 따라 노코멘트도 하나의 의사표시고요. 아하, 이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구나 알 수 있죠.”


‘사람’의 중요성 아는 기업이 헤드헌팅사 애용
―주로 어떤 회사들이 의뢰합니까?

“저희 거래 기업이 5000개사 정도 되는데 대부분 대기업 공기업 등 탄탄한 회사예요. 헤드헌팅 수수료가 생각보다 비싸거든요(고용이 성사되면 수수료는 고용주 측이 전액 부담한다). 채용한 인재의 연봉이 3억이면 수수료가 1억 가까이 되니까 웬만한 기업은 엄두를 못냅니다.

기꺼이 부담하는 곳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아는 기업들이다. 다만 이런 작업들은 비밀보장 각서를 쓴 뒤 이뤄진다. 아쉽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다.

“본인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주요기업의 경우 웬만한 사람은 다 평판조회를 합니다. 해외에 있는 사람들도 영어로 조회하죠. 예를 들면 빌 게이츠 밑에서 일했던 사람을 한국의 IT 기업에 영입한다면 빌 게이츠에게 평판조회를 해야 되는데, 그들은 그걸 해줘요. 자기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니까요.”

―정말 빌 게이츠가 해줬나요?

“빌 게이츠급의 인물, 예를 들면 아마존의 누구한테 평판조회를 했지요. 저희가 영어로 한밤중에 전화해서 합니다. 진짜 시시콜콜한 것들이 다 나오고 조회내용이 채용여부에 상당히 영향을 미칩니다.”


본인도 모르는 평판조회 활발

―헤드헌팅을 활용하는회사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사람’이 워낙 중요해져서요. 옛날에는 사람 하나가 그냥 큰 조직의 부품 같았잖아요. 요즘은 주요 대표급이나 핵심인물이 조직의 명운을 가르죠. 사람하나 잘못 뽑으면 회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 자꾸 검증을 해야죠.”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50만 명은 넘은 것 같아요. DB에는 기본적으로 본인이 등록하게 돼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 지원서를 보내는 사람들이 이력서니 경력기술서를 등록하는 거죠. 이후 기록관리를 합니다. 저희 회사 헤드헌터만 100명이 넘는데 이들이 계속 사람 만나서 인터뷰한 기록들도 남기고요. 자료들은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며 관리합니다.”

업력이 쌓이니 족보가 절로 생겨난다. 00은행 회장 후보라면 누구누구, 00사 사장후보라면 누구누구가 줄줄 나온다. 후보자가 굉장히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한정돼 있다고.

헤드헌팅회사를 세운 뒤 직장생활과 리더십, 커리어 관리에 관한 책을 10여 권 썼다. 출판을 통해 회사가 홍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퇴직자 ‘계속고용’이 바람직하지만, 고용 유연성 전제돼야
―핵심인재까지는 아니어도 퇴직 전후 시니어 직장인들이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에서 사장될 위기에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왔더군요.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 950여 만 명이 퇴직한다고. 그 사람들을 내버려두면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진다고요. 저는 퇴직자들이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하는 ‘계속 고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퇴직자 입장에서도 안정적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죠. 다만 계속고용이 널리 도입되려면 반드시 고용 유연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계속고용의 방식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으로 나뉜다. 우리 정부도 정년을 넘긴 근로자의 계속고용을 위해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독려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지원하는 계속고용제도는 일단 도입하면 모든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가령 전체 근로자 중 일부만 뽑아 재고용하는 길은 막혀 있다.

“흔히 ‘나이 들어 취업하려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하는데, 현실에선 그게 잘 안됩니다. 기여도는 낮아지는데 보상의 눈높이는 높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계속 고용하고 싶어도 손해를 감수할 수는 없는 거죠. 고용 유연성을 갖춰야 퇴직자들의 계속고용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요.”

―기여도의 기준은 어떻게 찾을까요.

“저희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채용팀장에게 두 가지 기준을 줍니다. 하나는 이 사람이 와서 조직에 얼마나 기여할 거냐. 그 기여도보다 급여를 많이 주면 회사는 적자죠. 둘째 이 사람에 대한 사회적 보상 기준인데, 다른 데 가면 얼마를 받을 수 있냐. 그보다 낮게 주면 이 사람이 여기 안 있겠죠. 그 두 가지 기준에 맞춰서 보상을 제시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시니어들이 과거의 기여분도 보상에 넣길 바라는 거예요. ‘내가 이 회사에 30년 기여했는데’하면서.”

―과거의 기여 부분은 정년퇴직으로 일단 해소가 됐다고 보는 게 맞죠.

“만일 다른 기업에서 그 분을 새로 뽑는다면 현재 이 사람의 쓸모로만 판단하잖아요. 퇴직자들이 일하던 곳에서 계속고용이 되지 않고 전혀 다른 곳에 하향 취업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도 있겠죠.”

경제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공부문 인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높은 자리보다 오래 다니는 게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 재고용 방식인데, 보상이나 근무기준이 판이하게 달라지던데요.

“우리는 노조나 본인이 급여가 깎이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현대차 등 몇몇 대형노조들이 급여 삭감 없는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잖아요.”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씀이죠.

“저는 퇴직한 뒤에도 어떤 일이건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퇴직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목은 수입이 아니라 자기 존재감이 없어져서예요. 직장생활을 했거나 사회적 관계에서 자기 의미를 찾았던 사람들은 내가 아무에게도 의미가 없는 존재가 돼 버리는 걸 못 견뎌하죠. 나의 존재감을 어떻게 찾아낼까를 고민하는데, 저는 그게 일이라고 봅니다.”

이런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퇴직 관련 화제가 나오면 ‘오래 다니는 걸 최우선으로 하라’고 조언한다고.

“높은 자리보다 오래 다니는 게 중요하다. ‘나이 들었다고 급여를 절반으로 깎는다’고 하소연해도 그래도 다니라고 얘기해줍니다.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게 일하는 거다. 오래 다니는 길을 선택하라고요. 눈높이만 낮추면 회사도 본인도 좋은 거죠.”

사내 산행 동호회인 ‘요산요수’에 열심히 참여한다. 대체로 연 4~5회 정도 전국의 산과 길을 찾아다닌다고. 커리어케어 제공




이직하려면 몸값 높을 때

두번째 과제로 그는 시니어들 스스로가 커리어 관리와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사 시절 동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개개인은 굉장히 유능하고 똑똑하고 감각도 있지만 전문성이 없어요. 갑자기 특파원 갔다가 시경캡 갔다가, 이 일 저 일 모두 잘하는 게 자랑이죠. 이러면 회사로서는 유능한 기자일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주특기를 알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뽑을 이유가 없죠. 자기 분야를 꾸준히 갖고 가야 합니다. 커리어 관리는 젊었을 때는 물론, 50대 60대에도 해야 합니다.”

―퇴직은 정해진 미래인데, 전혀 준비하지 않다가 갑자기 충격받는 분들이 많죠.

“저희가 정년퇴직 전이라도 ‘옮기시라’고 제안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이 분은 ‘아니 거기보다 여기가 훨씬 좋은데…연봉도 많고 대우도 좋고, 옮길 이유가 없다’고 거절해요. ‘이걸 다 누리고 가겠다’는 거죠. 그 분이 임원 끝나고 나면 쫓아와요. ‘나 끝났어. 나 좀 어떻게 해줘….’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다른 데서도 안 뽑거든요. 여기서 다 누리고 나서 얼마든지 다른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예요.”

인생2막을 준비하며 지난해 8월 강원도 홍천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주말마다 내려가 열매를 가꾸는 작업에 집중한다. 사진은 복숭아 봉지작업을 마친 뒤의 한컷. 신현만 씨 제공


그가 인생 2막 실험을 진행중인 홍천의 집 과 집 주변의 작물들. 사과 배 복숭아 대추 매실 앵두 블루베리 등 온갖 과일나무를 심어 키워내고 있다. 이렇게 키워낸 과일은 주변에 나눠주는데, 예약이 밀려 있다고 한다. 신현만 씨 제공



인생 2막 준비 중
정작 이런 그는 자신의 퇴장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제 나이가 있잖아요. 남들은 오너니까 계속 일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CEO가 늙으면 조직이 다 늙어요. 그래서 떠나야겠다, 그럼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강원도 홍천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 주변에 온갖 과일나무를 심었다. 주말마다 이곳에서 지내며 귀촌의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집 얻을 때 부동산 업자가 땅이 좀 넓은 걸 사라고 권하더군요. 전원주택이라 해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나무를 심든 땅을 파든 목공을 하든, 일거리가 없으면 남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더군요.

저도 과연 내려가서 살 수 있을까,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자꾸 가봅니다. 가면 종일 나무 만지고 땅도 파고 이웃들과 얘기도 하고 지내죠. 나이 들어서는 머리쓰는 일보다는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4월 26일, 커리어케어 창사 24주년을 맞아 사무실에서 임원들과 가벼운 잔치를 벌였다. 커리어케어 제공


걷기가 취미. 홍천에 내려가기 전에는 주로 걷기와 산행으로 주말을 보냈다.생각이 막히면 퇴근길에 한강길이든 양재천이든 한두시간 걸으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신현만 씨 제공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