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현안 쓰나미 속 정파 싸움에 파행 계속 방송-온라인 매체들 존폐 위기 내몰릴 수도 중립 인사 합의 추천으로 정상화 물꼬 터야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고민 끝에 이 후보를 지명한 용산 사정도 딱하고, 인사청문회부터 갈아 버리겠다며 벼르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말이 뻔한 희극을 재방송 보듯 다시 접할 시민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방송, 통신, 인터넷 정책을 두고 여야가 공수를 바꿔 가며 싸워 온 지 벌써 20년인데, 최근 2년은 그 무모함에 있어서 경지를 달리한다. 아예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머리 대고 싸우는 육박전 양상이다.
이럴 일이 아니다. 지금 방송, 통신, 인터넷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도 대응하기에 벅찬 중대 정책 사안들이 줄을 서 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매체에 대한 기술 규제 정비와 디지털 시장에 대한 규제 개혁 논쟁이 일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야 공히 약속해 온 규제 개혁 사안들이 20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대기 중이다. 이 와중에 여야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놓고 멱살잡이 중이다. 참치잡이 원양어선 위에서 꽁치 머리를 두고 싸우는 격이다.
애초에 방통위를 이렇게 정파적으로 남용하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 중앙 행정부처가 행정권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업무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체로 독임제로 운영하는 가운데, 1980년 권위주의 정권에서조차 구 방송위원회는 명목적이나마 합의제로 출범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방송위원회는 행정부 수반을 중심에 둔 계서적 행정체계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성을 지닌 위원회였기에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이 각각 위원 중 3분의 1을 추천하고 합의적으로 운영했다. 이후 방송통신 융합 환경이 도래하고 방송법이 몇 번이나 개정됐지만 합의제 위원회 구성과 운영의 원리는 변한 적이 없다. 사회적 소통의 기반을 이루는 매체 환경을 조성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위원회의 구성은 물론 운영도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정이 공고화한다고 해서 모든 제도가 성숙하기만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렵사리 합의제적 전통을 이어온 제도를 몇 년 만에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뜨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렇게 해보자. 이번 아니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다음 번이라도 방통위를 명실상부하게 구성할 수 있게 해보자. 야당도 2인 파행위원회라 비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위원 추천에 참여함으로써 구성의 의무와 향후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 덧붙여 5인 중 2명을, 아니면 위원장 한 명만이라도 여야가 합의해서 추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합의 추천이란 결국 여야가 각자 비토권을 행사하는 셈이 되니, 서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인사를 배제한 ‘중립 영역’을 방통위원회 내부에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공영방송 이사회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도 방통위와 마찬가지로 합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법을 개정해서 여야가 추천권을 나누어 행사하되 그중 3분의 1만이라도 합의해서 추천함으로써 ‘정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인사들은 배제’한 중립지대를 이사회 내부에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대안마저 그저 꿈같이 들릴 뿐이라면 정말이지 우리는 희망이 없다. 이미 여야 정파적 힘겨루기의 격전지가 돼버린 공영방송 이사회와 방통위에 저질 희극이 반복해서 올라오는 꼴을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