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대하는 새 냉전 질서에서 미국이 한국 못 미더워한 결과
2019년 9월 국내 언론에 “주한미군이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이 오산과 군산에 배치한 F-16 전투기를 F-35A 60여 대로 대체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주한미군에는 단 1대의 스텔스 전투기도 상시 배치되지 않았다.
미국 공군 F-35 블록 4 전투기. [미 공군 제공]
주한미군 배치될 F-16V 성능 우수하지만…
주한미군은 2023~2025년 F-16을 모두 블록 70 사양으로 교체하고, 오산공군기지에서 운용하는 또 다른 주력 기종 A-10C를 2020년대 후반까지만 유지할 계획이다. A-10C는 국내 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이 2029년까지여서 이때까지 주한미군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이후 어떤 기종으로 대체될지는 정해진 바 없다. 군수지원 효율성을 감안하면 오산의 A-10C는 F-16V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은 2040년대까지 F-16V를 운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최소 15년간 주한미군 전투기 전력은 4.5세대로만 유지된다는 얘기다.
F-16V는 분명 우수한 전투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4.5세대 전투기라서 5세대 기종인 F-35와는 모든 면에서 극복할 수 없는 성능 격차가 존재한다. 북한 방공망이 러시아 도움을 받아 현대화되고 있고, 중국은 스텔스 전투기 J-20과 J-31B를 무서운 속도로 찍어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감안하면 F-16V만 운용하는 주한미군이 과연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제대로 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끼칠 소식이 나왔다. 주한미군에 온다던 F-35 60여 대가 주일미군으로 간다는 것이다.
중국 항공모함 탑재 스텔스 전투기 J-31B. [위키피디아]
F-15EX는 한국 공군이 운용하는 F-15K와 같은 F-15 시리즈이긴 하지만, 성능을 뜯어보면 사실상 다른 기종에 가깝다. 기계식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비행제어시스템의 일종) 대신 디지털 FBW가 적용돼 조종 반응성과 기동성이 크게 향상됐다. 신형 무장 장착 시스템을 갖춰 무기 탑재량도 늘었다. 고성능 AN/APG-82(V)1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원거리에서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 적외선 센서 ‘리전(Legion)’ 포드를 갖춰 ‘눈’도 밝다. 적 대공미사일과 전자전 위협을 무력화하는 현존 최강 전자전 시스템인 이글 수동·능동형 경보·생존체계(EPAWSS)를 갖춘 것도 강점이다.
미국 공군 F-15EX 전투기. [보잉 제공]
확정된 것만 48대 이상이 배치될 예정인 F-35는 F-15EX보다 더 강력한 기종이다. 미국은 이번 주일미군 증강 계획 발표에서 일본 미사와 공군기지의 F-16C/D 36대를 F-35A 48대로 교체하고, 이와쿠니 기지의 해병대 F-35B 수량도 늘린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새로운 제7함대 전진배치 항공모함으로 지정돼 일본으로 향하는 조지 워싱턴 항모에도 F-35C 전투기 12대가 실려 있다. 올해부터 3~4년 내 주일미군의 F-35는 최대 70~80대에 달하게 된다.
F-35 블록 4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F-35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군과 우방국 공군에 배치되는 F-35는 블록 3F 버전이라 ‘완전형’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블록 4는 미군이 F-35라는 플랫폼에서 구현하려 한 능력을 제대로 갖춘 첫 번째 버전이다. 기존 F-35와는 차원이 다른 작전 능력을 갖고 있다. 현재 F-35 블록 4는 TR3(Technology Refresh 3)라는 개량을 거친 모델이다. 2026년부터 생산되는 신규 기체에는 해당 TR3 사양이 적용된다. 쉽게 말하자면 중요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교체한 모델이다. 미션 컴퓨터의 처리 속도와 메모리 용량이 크게 증가해 방대한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똑같은 AN/APG-81 레이더를 사용해도 탐지 거리와 식별·추적 능력이 기존 블록 3 계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것이다.
블록 4는 무장 능력도 크게 강화된다. 내부 무장창을 개량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탑재량이 4발에서 6발로 늘었다. 한국 공군 KF-21에 채택된 장거리공대공미사일 ‘미티어’와 스텔스 대함미사일 ‘NSM’ 등 새로운 무장도 탑재된다. 이들 무기는 신규 생산 기체에 탑재되는 차세대 AN/APG-85 AESA 레이더와 연동된다.
기존 AN/APG-81 레이더에 갈륨비소를 사용한 송수신 모듈이 쓰이는 반면, AN/APG-85 레이더의 송수신 모듈에는 차세대 소자인 질화갈륨이 쓰인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성능도 크게 강화돼 기존 레이더보다 탐지 거리와 정밀도,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AN/APG-85 레이더의 구체적 성능은 공개된 바 없지만, 적 스텔스기를 원거리에서 탐지·식별·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외선 탐지장비 IRST와 전자광학추적장비 EOTS로 획득한 데이터를 융합해 적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스텔스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다면 레이더를 끈 상태에서 IRST와 EOTS로 적기를 찾아낸 후 데이터링크로 후방 아군기에 정보를 보내 장거리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
미군은 F-35의 강점을 활용해 F-15EX나 F/A-18E/F 같은 4.5세대 전투기를 ‘미사일 캐리어’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활용 방안은 이런 식이다. 우선 적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F-35는 최전방에서 ‘눈’ 역할을 한다. 비교적 쉽게 노출되는 F-15EX나 F/A-18E/F는 중장거리공대공미사일을 주렁주렁 매단 채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F-35가 찍어주는 표적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주먹’ 역할을 한다.
이처럼 주일미군에 대량 배치되는 F-35 블록 4는 함께 투입되는 다른 4.5세대 전투기들과 대단히 효과적으로 장거리 공대공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우선 공군의 경우 F-35A가 최전선에서 적 전투기를 탐지·식별해 표적 정보를 전송하면 대당 최대 20발의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한 F-15EX가 미사일 세례를 퍼붓는다. 해군·해병대 F-35B도 최전방에서 적 전투기들을 포착한 후 이를 데이터링크로 F/A-18E/F에 보내 AIM-260(사거리 200~300㎞)이나 XAIM-174B(사거리 500~600㎞)를 날리는 형태로 초장거리 공대공 교전이 가능하다.
요컨대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F-16V가 전술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는 전력이라면, 주일미군에 배치되는 F-35A/B/C 블록 4와 F-15EX는 전략 수준의 임무를 맡는 것이다. 이 같은 전력 배치는 미국이 생각하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위상이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주일미군의 제5공군은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 제7공군을 지원하는 성격의 전력이었다. 혼슈 미사와에 배치된 F-16C/D는 적 방공망 제압, 오키나와 가데나에 배치된 F-15C/D와 지원 전력은 미 본토와 괌에서 날아오는 폭격기와 전투기를 엄호·지원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러나 이번 기종 교체를 통해 미국은 미사와·가데나에 고성능의 공세적 전력을 배치했다. 인도·태평양 군사력 운용의 핵심 거점이 한국이 아닌 일본임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 미사와 공군기지의 주일미군 장병들. [미사와 공군기지 제공]
美 태평양 군사 거점 된 일본
사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매력적인 전진기지다. 과거 냉전 시절 서독이 소련 심장부를 겨눈 전투기와 중거리탄도미사일이 배치된 최고 전진기지였던 것처럼 말이다. 신(新)냉전에선 중국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한국이야말로 각종 전략자산을 배치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다. 그러나 미국은 새 전략자산을, 그것도 당초 한국에 배치하려던 것을 일본에 배치했다. 이 같은 포석의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한 새로운 냉전 질서에서 한국을 못 미더워한다는 뜻이다.
이번 서태평양 미군 전투기 교체를 통해 한국 외교안보당국은 현 정책 기조가 올바른지 곱씹어봐야 한다. 과거 냉전 시절 최전방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들이 미국으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았고, 그 덕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 밝은 미래는 없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48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