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니아 연설 도중 괴한의 총격을 받은 뒤 유세장을 빠져나가면서 주먹을 쥔 오른손을 치켜들며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싸우자(Fight)”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실베니아=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펜실베니아주에서 유세하던 도중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가운데 이번 사건이 공화당 지지층 결집 등에 영향을 미쳐 11월 대선 판세까지 흔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고령으로 인한 인지 능력 약화를 이유로 대선 후보 사퇴론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피격 사건의 여파에 미 정계는 물론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날 피격을 당한 뒤 단상 아래로 몸을 낮췄다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빠져나오는 모습은 영상과 사진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그는 경호원들의 제지에도 귀에서 피를 흘린 채로 주먹 쥔 팔을 하늘로 뻗어보였다. 지지자들에게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이에 유세장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은 ‘USA’를 연호하며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성추문 입막음’ 사건에서 유죄평결을 받는 등의 각종 사법 리스크를 역으로 활용해왔다. 이번 사태가 자신을 ‘정치적 순교자’로 규정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격 사건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을 더욱 강력하게 결집할 뿐만 아니라 보수층 내 반(反)트럼프 유권자가 더 이상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인사들은 이날 일제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대선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군으로 꼽히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도 소셜미디어에 그의 쾌유를 바라는 글을 올렸다.
루비오 의원은 X(옛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피격 직후 얼굴에 피가 묻은 채 성조기 아래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펜실베이니아 유세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버검 주지사는 “우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의 적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며 “그가 오늘 그것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두문불출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도 “무분별한 폭력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에 감사한다”며 “우리나라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올렸다. 차남 에릭도 “(아버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강인한 사람(toughest man)”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머스크 CEO는 X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빠른 회복을 바란다”고 올렸다. 그는 “순교자는 살았다”라는 표현을 쓰며 트럼프 전 대통령 경호를 담당한 미 비밀경호국에 대해 “(피습을 막지 못한 것은) 무능했거나 고의였거나”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바이든 정권의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악’으로 몰아가면서 결과적으로 이같은 공격의 환경이 조성됐다는 주장이다.
‘힐빌리의 노래’ 저자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군으로 꼽히는 J.D. 밴스 상원의원은 명확하게 ‘바이든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X에 “오늘은 단지 독립된 사건이 아니다. 바이든 (대선) 캠페인의 핵심 전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멈춰야 하는 권위주의적 파시스트(authoritarian fascist)라는 것이다. 그 수사학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암살 시도로 직접 이어졌다”고 했다.
팀 스콧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이번 사태를 좌파 미디어의 책임으로 돌렸고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주지사는 “사악한 공격자에 대한 신속한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하면서 이같은 분위기가 더 고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트럼프 캠프 측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밀워키에서 여러분과 함께 그를 미 대선 후보로 지명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진행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리 당의 후보로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계속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