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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스치고도 주먹 불끈… 美언론 “역사에 남을 장면”

입력 | 2024-07-14 16:29:00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3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연설 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며 “싸우라(Fight)”고 외치고 있다. 11월 5일 미 대선을 114일 앞두고 대선 후보에 대한 초유의 암살 시도가 벌어진 만큼 대선 판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버틀러=AP 뉴시스


CNN 홈페이지 영상 캡처.

군중의 환호 속에 등장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어투로 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에 대해 “(국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트를) 보자”며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멀리서 가느다란 3번의 총성이 울렸다. 즉시 오른쪽 귀에 뭔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손을 갖다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대로 연단 아래로 몸을 숨겼다. 경호원들이 부리나케 무대로 뛰어올라 그를 감싸자 놀란 청중들은 몸을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13일 오후 6시 11분(현지 시간) 순식간에 벌어진 도널드 트럼트 전 대통령을 향한 암살 시도는 축제와도 같던 현장을 순식간에 끔찍한 아수라장으로 바꿔 버렸다. 경호원 4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몸을 감싼 뒤에도 총성은 5번 더 이어졌다. 총격으로 연단 뒷편 오른쪽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은 머리에 피가 낭자한 채 쓰러졌고, 주위 사람들은 긴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중 발생한 총격으로 경호원들에 에워싸여 대피하고 있다. 2024.07.14 버틀러=AP/뉴시스


축제의 유세장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는 15일부터 나흘 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개최될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 행사였다. 지난달 29일 TV토론에서 승기를 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이번 유세는 당 대선후보 공식 지명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출정식이나 다름 없었다.

유세 현장은 낮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가 쓰인 모자와 티셔츠 등을 걸친 약 1만5000명의 지지자로 열기가 넘쳐 흘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은 6시경에 나타났는데도, 유세 참석자들은 컨추리 음악 가수 리 그린우드의 노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약 10분 뒤 암살 시도가 벌어지자 현장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다. 연단 밑으로 몸을 숨겼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약 1분 뒤 경호원들과 함께 일어섰을 땐 오른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 주변까지 번져 있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채 “대통령님(Sir)”를 외치며 무대 아래로 데려 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벗겨진) 신발 좀 신겠다” “잠깐, 잠깐”을 반복하며 경호원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유세 중 총격으로 추정되는 소음과 함께 쓰러진 뒤 부상을 입고 대피하고 있다. AP 뉴시스

그 순간, 공포에 질려있던 관객석에선 “유에스에이(USA·미국)”가 터져 나왔다. 잠시 뒤 무대 옆으로 내려가 경호원들이 쉐보레 서버번 차량에 태우는 동안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시 한번 군중을 향해 돌아서 환호에 답했다. 그가 차를 타고 떠난 건 오후 6시 14분, 암살 시도 약 3분 뒤였다.

“트럼프, 역사에 남을 순간을 만들다”

갑작스런 총격, 피투성이가 된 연사와 공포에 짓눌린 청중. 하지만 그들을 다시 환호하게 만든 트럼프의 몸짓은 또 하나의 “역사가 잊지 못할 순간”을 창조해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그(트럼프)의 본능이 만든 장면”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 현대 미디어에 대한 그의 능숙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순간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CNN 홈페이지 영상 캡처.

환호 속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냈지만, 유세장에 남아있는 건 죽음의 그림자였다. 무대 주변에는 현장에서 총을 맞고 숨진 남성 1명과 중상을 입은 2명의 남성이 남아 있었다. 다친 2명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현재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NYT에 따르면 유세 참석자들은 당시의 혼란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했다. 한 시민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며 울먹였고,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무며 기도했다”고도 전했다. “혼란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가로막아 나갈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한 지지자는 유세장에서 “트럼프가 오늘 당선됐다. 그는 순교자다”고 계속해서 소리치기도 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