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3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연설 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며 “싸우라(Fight)”고 외치고 있다. 11월 5일 미 대선을 114일 앞두고 대선 후보에 대한 초유의 암살 시도가 벌어진 만큼 대선 판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버틀러=AP 뉴시스
CNN 홈페이지 영상 캡처.
13일 오후 6시 11분(현지 시간) 순식간에 벌어진 도널드 트럼트 전 대통령을 향한 암살 시도는 축제와도 같던 현장을 순식간에 끔찍한 아수라장으로 바꿔 버렸다. 경호원 4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몸을 감싼 뒤에도 총성은 5번 더 이어졌다. 총격으로 연단 뒷편 오른쪽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은 머리에 피가 낭자한 채 쓰러졌고, 주위 사람들은 긴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중 발생한 총격으로 경호원들에 에워싸여 대피하고 있다. 2024.07.14 버틀러=AP/뉴시스
● 축제의 유세장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유세 현장은 낮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가 쓰인 모자와 티셔츠 등을 걸친 약 1만5000명의 지지자로 열기가 넘쳐 흘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은 6시경에 나타났는데도, 유세 참석자들은 컨추리 음악 가수 리 그린우드의 노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하지만 약 10분 뒤 암살 시도가 벌어지자 현장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다. 연단 밑으로 몸을 숨겼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약 1분 뒤 경호원들과 함께 일어섰을 땐 오른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 주변까지 번져 있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채 “대통령님(Sir)”를 외치며 무대 아래로 데려 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벗겨진) 신발 좀 신겠다” “잠깐, 잠깐”을 반복하며 경호원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유세 중 총격으로 추정되는 소음과 함께 쓰러진 뒤 부상을 입고 대피하고 있다. AP 뉴시스
갑작스런 총격, 피투성이가 된 연사와 공포에 짓눌린 청중. 하지만 그들을 다시 환호하게 만든 트럼프의 몸짓은 또 하나의 “역사가 잊지 못할 순간”을 창조해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그(트럼프)의 본능이 만든 장면”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 현대 미디어에 대한 그의 능숙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순간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CNN 홈페이지 영상 캡처.
NYT에 따르면 유세 참석자들은 당시의 혼란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했다. 한 시민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며 울먹였고,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주기도문을 외무며 기도했다”고도 전했다. “혼란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지만,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가로막아 나갈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한 지지자는 유세장에서 “트럼프가 오늘 당선됐다. 그는 순교자다”고 계속해서 소리치기도 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