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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진기자들은 어떻게 트럼프가 총 맞는 순간을 찍을 수 있었을까?[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7-14 15:58:00


‘뉴욕타임스’ 더그 밀 기자가 촬영한 트럼프 피격 모습. 사진을 확대해 보면 사진 오른쪽으로 탄환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4개월 앞둔 14일 일요일 오전(현지 시간 13일 오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펜실베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를 위해 무대에 오른 지 10분도 안 돼 발생한 사건입니다.
다행히 트럼프는 SNS에 올린 영상을 통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안전한 곳으로 복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세 현장 주변 건물 위에서 총을 쏜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과 특수기동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사진기자들이 총격 순간을 거의 완벽하게 포착했다는 점입니다.
현직 사진기자로 국내 정치 현장을 취재해 본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상황은 아주 돌발적이라 동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포착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피격 직후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진은 이번 대통령 선거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거라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공화당 지지자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이미 자신의 엑스(X·트위터)에 이 사진을 공유했고, 지지자들도 퍼 나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피격 직후 연단을 내려오며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는 트럼프. 뒤로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성조기가 보인다. (AP Photo/Evan Vucci)

국내로 들어온 사진의 촬영 정보 메타데이터와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의 바이라인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우선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들과 연단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은 망원렌즈를 끼고 트럼프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험한 말을 하는 트럼프의 얼굴을 촬영하기에는 적당한 렌즈인거죠.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 사진은 AP통신 Evan Vucci 기자가 촬영한 사진인데 1977년생인 그는 2003년부터 AP통신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사진기자입니다. AP통신 Evan Vucci 기자는 소니에서 나온 알파 1 미러리스 카메라에 400미리 망원렌즈를 장착했습니다. 거기에 렌즈를 1.4배 좀 더 길게 기능할 수 있게 하는 텔레컨버터를 장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진기자들이 프로야구를 찍을 때 사용하는 600미리 렌즈 정도의 효과를 주는 세팅입니다.

오른쪽 어깨에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메었다면 반대편 왼쪽 어깨에는 소니 알파9 카메라에 24-70렌즈를 끼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도 찍을 수 있는 세팅이라 연단에 쓰러진 트럼프 후보를 경호원들이 몸으로 감싸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고 곧바로 주먹을 쥔 채 연단을 내려오는 트럼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연단 바로 밑에서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가 총탄 소리가 들린 직후 연단 오른쪽으로 뛰어가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트럼프 후보 모습을 촬영했다 (AP Photo/Evan Vucci)

AP통신은 Evan Vucci 기자 이외에 한 명의 기자를 더 현장에 배치했습니다. Gene J. Puskar 기자 역시 소니 알파 1 미러리스 카메라에 400미리 망원렌즈, 그리고 1.4배 텔레컨버터를 장착했습니다. Vucci 기자가 연단 가까이서 촬영하고 Puskar 기자는 떨어져서 촬영했습니다.

초망원렌즈로 포착한 트럼프의 상처 모습. (AP Photo/Gene J. Puskar)


현장의 사진기자는 또 AFP 통신의 Rebecca DROKE, 로이터통신의 Bredan McDemid, 게티이미지의 Anna Moneymaker가 있었습니다. 게티이미지의 Anna Moneymaker 기자는 총성 직후 연단으로 접근해 고개 숙인 채 피를 흘리는 트럼프의 얼굴을 경호원들 발 사이로 찍었습니다. 빅클로즈업이었습니다. 이밖에 통신사 기자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이들이 전 세계 주요 통신사 소속들입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인원이 현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사 기자로는 뉴욕타임스의 더그 밀(Doug Mills) 기자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더그 밀 기자는 트럼프의 연단 바로 밑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스친 탄환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더그 밀 기자가 촬영한 트럼프 피격 모습. 사진을 확대해 보면 사진 오른쪽으로 탄환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의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의 배경으로는 트럼프 뒤의 임시 계단에 앉은 청중들의 모습입니다만 더그 밀 기자가 찍은 사진의 배경에는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연단 아래에서 트럼프를 밑에서 위로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0년생인 더그 밀 기자는 미국 백악관을 1983년 로널드 레이건 시절부터 출입한데다 한미 정상회담 등도 커버했기 때문에 백악관 스탭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사진기자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그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는 최근에도 바이든 대통령 국정 운영 모습과 트럼프 후보의 유세 모습 사진이 올라왔었습니다.

사전에 사진기자들이 현장을 잘 촬영할 수 있도록 연단과 동선을 계획해서 행사를 준비하는 미국 정치 현장의 관행과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온 기자들이 찰나를 기록할 수 있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해서 테러가 유도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해는 없으시겠지만요. . 지지자들의 감정을 흔들어버린 이 사진들이 올해 미국 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사진기자로서 무척 궁금해집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