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전서 돈 버는 외국 용병들 수단 정부군과 신속지원군 내전… 차드-니제르-말리 등 1만8000명 신속지원군 돕는 용병으로 참전… 정부군 “러 바그너도 가세” 비난 수단 통해 무기 구입한 우크라 군… 내전 뛰어들어 바그너 부대 공격
내전 중인 수단의 국내 난민은 91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수단을 탈출한 난민들이 이웃나라 차드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수단인들의 고난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입김이 끼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이집트는 수단을 수탈했다. 1881년 무함마드 아마드는 스스로 마흐디, 즉 ‘인도된 자’로 칭하고 영국과 이집트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시작했다. 1885년 마흐디군은 수단 총독인 영국군 소장 찰스 고든을 죽이면서 하르툼을 점령했다. 고든은 청에서 일명 ‘상승군’을 지휘해 태평천국군을 물리친 이름난 군인이었지만 소용없었다. 1898년 영국군 소장 허버트 키치너는 2만6000명의 병력으로 옴두르만에서 5만2000명의 마흐디군을 분쇄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직후 키치너를 하르툼 남작에 봉했다. 이로써 수단은 사실상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56년 수단은 독립국이 되었다. 시작부터 꼬인 독립이었다. 1899년 이래로 영국은 수단의 북부와 남부를 별개로 관리했다.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어서였다. 그럼에도 영국은 나 몰라라 하고 수단에서 손을 뗐다. 영국이 과거에 그래 왔듯 일부러 갈등 요소를 남겨 나중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두려는 계산일 수도 있었다. 독립하기 전인 1955년부터 이미 시작된 수단의 1차 내전은 1972년까지 계속됐다.
아프리카 수단 정부군과 맞서 싸우는 신속지원군(RSF) 병사들이 작년 9월 수도 하르툼에서 열린 지지 집회에서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하르툼=AP 뉴시스
용병은 온전히 오늘날의 현상은 아니다. 서양이 정신적 지주로 삼는 고대 그리스는 페르시아엔 그저 용병 공급처였다. 일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나바시스’와 ‘오이코노미코스’ 등을 쓴 크세노폰이 바로 그런 용병 대장이었다. 알고 보면 고대 이집트는 비싼 값을 치르고 누비아 궁수를 용병으로 썼다.
중세에도 용병은 있었다. 12세기부터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프리 컴퍼니’였다. 프리는 ‘자유로운’을 뜻했고 컴퍼니는 ‘(전장에서) 빵을 같이 먹는 사이’를 뜻했다. 이들에게 자유란 곧 돈만 생기면 어느 편도 들 수 있는 자유였다. 해적질로 유명한 구호기사단의 단원으로 나중에 대용병대(Great Company)를 재창설한 장 몽트레알 뒤 바, 백색용병대(White Company)의 콘도티에로였던 존 호크우드는 르네상스 시절의 이탈리아에서 돈을 번 대표적인 용병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회사라는 명칭은 “돈이 전부”인 프리 컴퍼니의 역사적 전통을 정확히 잇는 것이었다.
용병은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용병을 부리려면 돈이 든다. 차드 등에서 온 약 1만8000명의 용병을 부리는 쪽은 다갈로의 신속지원군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잔자위드가 장악한 다르푸르의 금광 덕이다. 수단은 다갈로의 금을 받고 돈과 무기를 제공하는 아랍에미리트를 비난하고 있다.
신속지원군은 스스로 용병이 되기도 했다.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이래로 4만 명의 수단인 용병을 후티 상대의 전투에 투입했다. 이들은 세 명 중 한 명꼴로 14세에서 17세 사이의 미성년자였다. 남의 전쟁에 목숨을 내놓는 대가로 이들의 가족이 받는 돈은 약 1300만 원이었다. 또 신속지원군은 2019년 리비아의 칼리파 하프타르에게 1000명을 보냈다. 하프타르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대신하려고 미국이 20년간 데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원래 수단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였다. 1971년 수단 공산당이 당시 수단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고 1979년 수단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지원하면서 꼬인 적도 있지만 푸틴의 러시아는 다르푸르를 수단에서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막아 주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승인한 수단은 공격 헬기와 수송기 등을 러시아로부터 구매했다. 2019년 이래로 러시아는 홍해에 면한 수단항을 25년간 빌려 사용하려고 시도 중이다.
흥미롭게도 수단군은 러시아의 용병 회사 바그너가 병력과 무기 양쪽으로 신속지원군을 돕는다고 비난했다. 바그너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를 부인했지만 약 넉 달 후 타고 있던 비행기와 함께 재가 되었다. 프리고진이 보여줬듯이 용병은 언제든 필요하다면 반란한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