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군기는 군대 못지않다. 사소한 실수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짧게는 예과와 본과 6년, 길게는 전공의 기간까지 10년 이상 관계가 이어지는 좁고 폐쇄적인 사회인 탓도 크다. 의사들의 기강 잡기는 환자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집단의 결정에 동조와 복종을 강요하는 부작용도 작지 않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간 대치 국면에서 의료계의 집단행동 불참자 신상 공개와 조리돌림도 의사 군기 문화의 폐해를 보여준다.
▷최근 텔레그램에는 ‘감사한 의사-의대생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채팅방이 개설돼 ‘감사한 의대생’ ‘감사한 전공의’ ‘감사한 전임의’ 명단이 올라오고 있다. 의대생은 학교와 학년, 전공의와 전임의는 소속 병원과 진료과, 출신 학교 학번 같은 개인정보가 이름과 함께 공개된다. 채팅방 개설자는 ‘이 시국에도 의업에 전념하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려 한다’고 했지만 복귀자들을 조롱하며 추가 이탈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찰은 병원과 수업 복귀를 방해하는 불법 행위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동료들의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월엔 집단 사직에 불참한 전공의들 명단이 ‘참의사… 안내해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의사와 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참의사’ 명단 유출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은 최근 개원의 2명을 포함한 의사 5명을 업무방해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달에는 수업에 참여한 학생에게 공개 사과와 수업 거부를 강요한 혐의로 모 대학 의대생 6명이 입건됐고, 다른 3개 의대도 집단행동을 강요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의사를 악마화’한다고 반발한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집단행동을 강요하며 이탈자들을 ‘악마화’하고 있다. 환자 곁을 지키고 수업을 받겠다는 동료들의 소신을 조롱하고 사이버 폭력을 휘두르면서 어떻게 집단행동의 대의명분을 이해받으려 하나.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엘리트들의 건강하지 못한 집단주의 문화가 유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