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멍때리는 표정에 놀란 미국 승리를 부르는 제스처의 주인공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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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표정. 백악관 홈페이지
Misty eyes, blank stare, slack mouth,”
(울 것 같은 눈, 초점 잃은 시선, 벌어진 입)최근 미국 대선 TV 토론이 열렸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발언 내용은 앞뒤가 안 맞고 얼버무리며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날 가장 정확한 지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것입니다. “I really don’t know what he said at the end of that sentence. I don’t think he knows what he said, either.”(저 사람이 문장 끝에 뭐라고 말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것 같다)
영혼이 가출한 듯한 대통령의 표정이 너무 신기해 온갖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시험 첫 문제 읽었을 때 내 표정’ ‘슈퍼마켓에서 와이프가 사 오라는 목록 쪽지를 잃어버렸을 때 남편 표정’ ‘담배 한 갑 피고 맥주 8잔 마신 뒤 친구 바라볼 때 표정’ 등 대통령이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미국은 정치 연출학(political theatrics)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입니다. 토론이나 연설을 연극 무대로 보고, 정치인은 리더다운 표정과 제스처를 연출합니다. 이번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 연기는 0점에 가까웠습니다.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처럼 폭망한 사례를 알아봤습니다.
대선 토론 중에 조지 W 부시 후보(왼쪽)에게 너무 가깝게 접근한 앨 고어 부통령(오른쪽).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I thought he was going to hit George.”
(그가 조지를 때리는 줄 알았다)8년 상원의원, 8년 부통령을 지낸 후보와 5년 주지사 경험이 전부인 후보. 2000년 대선에서 맞붙은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후보의 경력 비교입니다. 화려한 경력의 고어 부통령의 승리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시 후보는 아버지 덕에 출세한 무식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습니다.
고어 부통령의 우위는 토론에서 무너졌습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동 때문입니다. 토론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도를 넘으면 보는 사람이 거북합니다. 1차 토론에서 부시 후보가 말할 때 고어 부통령의 다채로운 반응이 화제가 됐습니다. 한숨 쉬기(sighing), 고개 젓기(shaking head), 눈알 굴리기(rolling eyes) 등의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상대의 발언이 수준 미달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치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풍자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대선 토론이 기계 고장으로 중단되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오른쪽)과 지미 카터 후보(왼쪽). 위키피디아
They seemed less like leaders than deer caught in headlights.”
(그들은 리더 같지 않고, 자동차 불빛에 놀란 사슴 같았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지미 카터 후보가 맞붙은 1976년 대선 토론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이었씁니다. 우선, 16년 만에 처음 열린 토론이었습니다. 1960년 토론에서 존 F 케네디 후보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이후 대선 후보들은 자신감을 상실해 토론을 사절했다가 1976년 대선 때 두 후보가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둘째, 기계 고장으로 중단된 첫 토론입니다. 90분 토론이 80분쯤 지났을 때 음향기계가 고장 나 27분간 중단됐다가 기계를 고친 뒤 속개됐습니다.
기계를 고치는 동안 웃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기술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방청객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화제가 된 것은 두 후보의 행동이었습니다. 주변의 난리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잡담을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옆에 의자가 있었는데도 앉지 않은 두 후보는 토론 역사상 가장 어색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미국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입니다. 침묵을 꺼립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후보가 나홀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좋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토론을 취재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 말입니다. 한밤중 갑자기 자동차 불빛 안으로 뛰어든 사슴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입니다. ‘like a deer caught in the headlights’는 겁을 먹거나 놀란 상황을 가리킵니다. 정치인에게 놀란 사슴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비유입니다.
대선 토론 중에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리처드 닉슨 후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That son of a bitch just cost us the election.”
(저 자식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요즘은 수염을 기르는 대통령이 없습니다. 수염은 지저분하고 피곤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1913년 퇴임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이후 수염을 기른 대통령은 없습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고민은 수염이 너무 빨리 자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면도해도 저녁이 되면 거뭇하게 수염이 났습니다. 얼굴이 하얀 편이어서 수염 자국은 유독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1960년 부통령 때 대선에 출마한 그는 깔끔한 이미지의 케네디 후보와 격돌하게 됐습니다. 대선 토론을 2주 앞두고 언론인 월터 크롱카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수염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I can shave within thirty seconds before I go on television and still have a beard,”(30초 전에 면도하고 TV에 나가도 어느 사이에 수염이 자라있다)
결국 수염은 대선 토론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케네디 후보는 화장하지 않고 토론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방금 끝낸 캘리포니아 유세에서 자연스러운 태닝이 돼서 TV 화면에 잘 받았습니다. 경쟁심이 발동한 닉슨 부통령은 자신도 화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5 o’clock shadow’(5시의 그림자). 아침에 면도해도 오후 5시면 돋아나는 수염을 말합니다. 비서에게 급히 ‘레이지 쉐이브’(Lazy Shave)라는 제품을 사 오도록 했습니다. 수염 자국을 가려주는 파우더입니다.
토론장의 강렬한 조명 아래서 파우더가 땀과 결합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에서 흰색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습니다. 이 유명한 순간을 ’Nixon handkerchief moment’(닉슨 손수건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선거 패배의 순간을 말합니다. 바로 그 순간 닉슨의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캐봇 로지가 한 말입니다. 자신을 러닝메이트로 뽑아준 닉슨을 ‘SOB’라고 할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cost’는 ‘비용’이라는 명사 외에 ‘대가를 치르다’라는 동사로도 많이 씁니다.
명언의 품격
대선 토론 중에 시계를 보고 있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위키피디아
재선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슈퍼마켓 스캐너 사건. 대선 유세 중에 슈퍼마켓 행사에 참석해 스캐너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16년 전부터 슈퍼마켓에 나와 있던 스캐너를 신기하게 바라본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Bush Encounters the Supermarket, Amazed’(부시, 감격해 슈퍼마켓과 조우하다). 서민의 삶을 모르는 대통령을 꼬집는 기사였습니다. 이 사건 후 정치인이 민심을 모르는 행동을 하면 ‘supermarket scanner moment’(슈퍼마켓 스캐너 순간)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몇 개월 뒤 대선 토론이 열렸습니다. 질문 코너에서 한 여성이 경기 침체가 후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습니다. 그 순간 시계를 보는 부시 대통령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신호였습니다. 토론에 임하는 성의 없는 모습에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Only 10 more minutes of this crap.”
(10분만 더 이 헛소리를 참으면 된다)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시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crap’(크랩)은 ‘화장실’이라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헛소리’ ‘쓰레기’를 말합니다. 대선 토론이 쓰레기 같은 말잔치라는 것입니다. 시계를 본 뒤 부시 대통령의 대답입니다. ‘영혼 없는 대답’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Of course, you feel it when you’r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at’s why I’m trying to do something about it by stimulating the export, vesting more, better education system.”(대통령이면 당연히 경기 침체를 느낀다. 내가 수출을 늘리고, 더 나은 교육 시스템에 투자해 해결하려는 이유다)
실전 보케 360
미국인들이 휴일에 즐겨 입고 다니는 ‘방해하지 마. 나 오늘 쉬는 날’ 티셔츠. 아마존 홈페이지
Everyone has an off day.”
(누구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있다)‘off’는 ‘벗어난’, ‘day’는 ‘날’입니다. ‘off day’는 ‘평상시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 축구선수가 컨디션 난조로 골 찬스를 세 번이나 놓쳤습니다. 언론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He had an off day, missing three goal chances.” 앞뒤를 바꾼 ‘day off’도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이 씁니다. ‘off’는 ‘on’의 반대 개념으로 ‘끄다’라는 뜻입니다. ‘일을 끈 날,’ 즉 ‘쉬는 날’을 말합니다. “This is my day off.”(오늘 나 쉬는 날이거든). 방해하지 말하는 의미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1월 10일 소개된 고령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4년 중임제(최장 8년)인 미국 대통령 제도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이가 많으면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 자리는 정신노동의 강도가 워낙 세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을 마칠 때의 나이가 70대 후반 이후라면 적신호가 켜집니다. ▶2022년 1월 10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110/111165416/1
나이 때문에 잘 넘어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근무용 신발을 운동화로 바꾼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I’m a great respecter of fate.”
(나는 운명을 존중하는 사람이다)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힐 때 운명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고령이지만 대통령 도전이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respecter’(리스펙터)는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존중하다’라는 뜻이 있고, ‘차별하다’ ‘가리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no respecter of persons’(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관용구로 많이 쓰입니다. ‘Death is no respecter of persons.’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격언입니다.
I’m cognitively there.”
(나는 인지적으로 준비가 돼 있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재선에 도전할 때 자신의 인지력(정신건강)이 국정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지력 검사 결과를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be’ 동사 다음에 ‘there’가 나오면 ‘‘목표에 도달했다’라는 뜻입니다.
I will not make age an issue of this campaign. I am not going to exploit, for political purposes, my opponent’s youth and inexperience.”
(나는 나이를 선거 이슈로 만들지 않겠다. 상대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1984년 73세에 재선에 도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적수였던 56세의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가 나이를 문제 삼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정치 자산으로 만들며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역대 대선 토론에서 나온 최고 명언으로 꼽힙니다. 이렇게 재치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나라를 이끌어도 문제가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