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지금 당신이 디지털자산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
디지털자산 규제와 진흥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
디지털자산 갈라파고스 탈출을 위한 제언 2) 실명계좌제도 개선
디지털자산 갈라파고스 탈출을 위한 제언 3) 해외 투자자 허용
한국형 비트코인ETF 출시를 위한 선결 조건
디지털자산 규제 샌드박스가 필요한 이유
디지털자산 업계의 다양성 확보와 건강한 생태계 조성
디지털자산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잠재 위험이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고들 말한다. 특히 금융당국의 불신은 뿌리깊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2년 넘도록 비트코인 현물 ETF를 검토했던 이유이자, 우리나라 금융위원회가 법인과 기관의 디지털자산 투자,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은 2009년 첫 제네시스 블록이 생성된 이후 항상 이들 부정적 인식과 함께 했다. 최근 디지털자산을 결제수단으로 쓰거나 금융상품으로 개발하는, 심지어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도 등장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디지털자산을 온라인 카지노, 디지털 도박처럼 취급하는 국가도 있다.
과거 대부분의 국가는 비트코인을 비롯해 민간이 발행한 디지털화폐와 디지털자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앙정부의 신뢰를 기반으로 발행된 법정화폐와 자산만이 유일하다고 믿었다. 비트코인은 세계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부터 태어났다. 중앙화된 시스템을 거부한 언더독, 비주류가 비트코인의 시작이었다. 주류 매체들로부터 “비트코인은 죽었다”라는 부고 기사가 뜰 때마다 오히려 더 강력한 생존력을 발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등장했다. 태생부터 정부의 반대에 부딪힌, 주가 아닌 주변으로부터 시작한 디지털자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최근 바뀐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홍콩 등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서 디지털자산을 주류 금융시스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글로벌 트렌드와 국가들의 움직임
작년, 일본 민간기업이 개최한 디지털자산 전문 컨퍼런스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환영사를 하고 관계 장관들이 총출동해 활성화 정책을 심도있게 논의한 바 있다. 중국의 1국가 2체계에 놓인 홍콩은, 그동안 중국의 디지털자산 퇴출과 폐쇄 정책의 영향으로 산업 활성화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홍콩은 블록체인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이어 세계 최초로 이더리움 현물 ETF까지 내놓으면서 산업 육성 행렬에 합류했다. 파격적인 기업 우대 정책을 천명하며 디지털자산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 허브 타이틀 재탈환에 나섰다.
디지털자산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 출처=엔바토엘리먼츠
기존 금융산업에서도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올해 초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될 당시에도 운용자산만 1조 5000조 달러(약 1경 47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크게 바뀐 바 있다. 그 중심에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있다. 그는 2017년 “비트코인은 대표적인 자금세탁 수단”이라 말할 정도로 비트코인과 디지털자산에 굉장히 부정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2022년 주주서한에서 처음으로 블록체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USDC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 유명한 써클사에 투자를 단행했다. 블랙록이 USDC를 위한 전용 법정화폐 준비금 조합인 ‘서클 리저브 펀드’를 출시하면서 양사의 긴밀한 공조가 시작됐다. 블랙록이 USDC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동일 규모의 기금적립과 자산운용을 맡아 전통금융과 디지털자산의 상생 모델을 제시하였다. 앞으로 블랙록은 채권,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을 토큰화하겠다는 포부까지 밝힌 상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시장은 여전히 7년 전에 머물러 있다. 2017년, 세계 디지털자산 투자 광풍이 불어닥쳤을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필두로 금융사의 디지털자산 투자금지, 실명계좌 도입, 외국인 투자제한, 생산시설 퇴출 등 다양한 시장 억제 정책을 내놨다. 정부의 긴급조치 이후 무려 7년간 그 기조가 이어졌기에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더뎌지고 산업 토양은 황폐화됐다. 무엇보다도 블록체인에 미래를 걸었던 우수 인력들이 하나둘씩 해외로 떠난다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비트코인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우리나라 국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수혜를 전혀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가총액은 7년 전보다 12배 이상 커졌다. 기술과 시장의 발전, 팽창이 거듭되는 동안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변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어느 하나 아쉬울 게 하나 없는 세계 1등 국가, 1등 금융사가 디지털자산 산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다시금 곱씹어 볼 때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또한 정책의 기조를 과감히 바꿔 글로벌 흐름에 올라탈 시점이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싱가포르, 홍콩 등의 국가들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 정책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신산업을 바라볼 때 ‘허용’을 전제로 한다. 법에서 금지된 분야를 제외하면 모든 신사업을 허락한다. 만일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판결, 규율로 통제한다. 정부 정책의 속도가 기술, 산업의 발전 속도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러한 정책 기조를 네거티브 규제 체계, 즉 포괄주의라고 한다.
포괄주의는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규정 사항을 나열하고, 그 이외의 것은 원칙적으로 자유화하는 규율 체계다. 법적, 규제적으로 위법 사항만 제한하고 나머지는 허용한다. 관습법을 근거로 발달한 미국, 영국, 호주 등을 중심으로 활용된다. 신사업 허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의 개연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기술의 창의성, 유연성을 크게 발휘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기본으로 포지티브 방식, 즉 열거주의를 채택한다. 법에서 정의한 내용, 즉 열거된 내용을 제외하면 모든 신사업은 불법과 합법의 애매한 경계선에 놓인다. 다수의 회색 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규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정부가 정식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디지털자산업은 더욱 부정적인 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 기조로 인해 한국은 글로벌 선두국가와 속도 경쟁에서 뒤쳐진다. 정부주도 정책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절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기술의 발전방향은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장잠재력이 큰 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포괄주의로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 하다. 산업 전체가 아니라면 제한된 분야만이라도 시도해야 한다. 이미 국내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 규제 자유특구 등 기존 규제유예 제도들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규제유예 제도의 활용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이름을 땄다. 신기술,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하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도 금융규제 샌드박스라는 제도를 통해 혁신금융, 지정대리인, 위탁테스트 등 특화된 규제유예제도를 운영 중이다. 기존 금융업의 틀에 맞지 않던 디지털자산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다. 제한된 인원, 투자금으로만 참여할 수 있는 ICO(코인자금조달)라든지, 디지털자산에 특화된 결제, 대여, 운용, 자문, 일임 등을 제한적 허용해 신사업의 혁신은 이끌고 시행착오는 줄일 기회로 만들었으면 한다.
부산시는 2019년 7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블록체인 규제 자유특구로 지정됐다. 규제 자유특구란 특정지역에 각종 규제를 유예, 면제시켜 지역의 자립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현재까지 물류, 관광, 안전, 금융 분야에 블록체인 융복합 시범사업이 지정된 바 있다. 대구시, 인천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국고 지원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혁신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신산업 성장 지원에 나섰다.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 개발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자산 산업으로 점차 외연을 넓혀 홍콩, 싱가포르와 같이 도시형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도전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우리나라의 비전이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지 않도록, 우리나라 도시가 해외 금융허브 후보 도시와 경쟁 가능한 국제 도시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본다.
글 /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시중은행 디지털금융 전략기획자 출신으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인피닛블록’의 공동 창업자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 협의회장,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이사, 한국핀테크지원센터 혁신금융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새로운 시대의 부, 디지털자산이 온다’, ‘블록체인 트렌드’ 등이 있다.
정리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