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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정년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

입력 | 2024-07-15 23:15:00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65세의 절벽을 넘는다.’

일본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커버스토리의 제목이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부제로 붙은 ‘시니어 인재, 총(總)전력화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시니어에게 ‘인재’라는 표현을 붙인 게 조금 낯설기도 했다. 기업들의 99.9%가 65세까지, 24.7%가 70세까지 고용 보장(2023년 후생노동성 보고서)을 하는 나라에서, 일터의 고민이 더 이상 숫자가 아니라 고령 직원들의 생산성과 일의 보람 등 질적인 문제로 바뀌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2021년 정년제도를 아예 없앤 세계적인 지퍼제조업체 YKK그룹 인사 담당 임원의 얘기는 인상적이었다. “정년은 회사가 연령을 기준으로 사원을 퇴직시키는 이상한 제도”이며 “세계에서 법적 정년제가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등 일부 국가뿐”이라는 말이었다.

직원 4만 명이 넘는 대기업 YKK의 정년 폐지는 이례적인 일로 주목받았다. 과감한 조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2000년부터 보상 체계를 성과주의로 바꾼 인사제도 개편이 있었다. 역할을 명확하게 정한 직무에 보수를 연결시키고, 그 일에 대해 30대건 60대건 차이를 두지 않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평생고용과 연공급제로 대표됐던 일본이 고령 노동자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직무급제로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한국에선 ‘노인네’, 일본에선 ‘인재’?


일본에서 연공급제를 설명할 때 노동경제학자 에드워드 라지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계약이론이 자주 인용된다. 근로자는 고용 초기에 생산력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기업에 ‘예탁금’을 쌓고, 고용 후반기에 그 돈을 끌어내 높은 임금을 받으며, 정년은 그가 기업에 공헌한 총량과 임금 총액이 균형을 이루는 시기라는 것. 여기에는 회사가 정년까지 근로자를 자를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가 깔려 있다. 반대로 연공급제가 약화되면 고용 유연성이 커져야 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일을 멈추고 회사를 떠나는 정년제도는 이미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서구 대부분의 나라는 나이에 의한 차별이라며 정년을 폐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가운데 법정 정년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해외에서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며 시위하는 장면이다. 이는 연금 수급 연령이 늦춰지는 것에 대한 항의다. 그들에게 ‘정년(은퇴)’이란 공적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는 때를 뜻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대체로 이즈음에 일을 그만두지만 본인이 원하면 계속 일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정년’은 연금 받기 시작하는 시기


한국보다 고령화가 15∼20년을 앞서가는 일본에서 시니어들은 산업 현장의 주요 전력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법정정년은 60세지만, 고령자고용안정법에 따라 2013년부터 근로자가 희망하면 65세까지 고용 확보가 의무화됐다. 2021년에는 추가 개정을 통해 70세까지 고용 확보를 ‘노력 의무’로 했다. 그리고 이는 연금 수급연령을 늦추는 연금개혁과 연동해 진행된다.

한국은 묘하게 법정정년과 공적연금 수급 시기가 현재는 3년, 2034년 이후는 5년이 차이 나도록 설정돼 있다. 법으로 보장된 정년을 채워 퇴직하더라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수년간 소득 공백을 겪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 수준까지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54만 명의 은퇴로 향후 1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젊은이는 부족하고, 고령자들은 넘치는 세상이 왔다. 한국에도 시니어를 ‘인재’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 올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장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