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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동갑내기 소녀와 소년… 죽음의 의미보다 로맨스 집중

입력 | 2024-07-16 03:00:00

[선넘는 콘텐츠] 〈11〉 영화 ‘봄이 사라진 세계’ 원작 비교
日서 출간 직후 45만부 팔린 원작… 시한부, 알려야 하나 숨기는게 낫나
영화는 잔잔한 사랑 섬세하게 그려… 감독 “전하지 못한 마음에 집중”



영화 ‘봄이 사라진 세계’는 시한부 소녀 하루나(데구치 나쓰키·오른쪽)와 소년 아키토(나가세 렌)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린다. 넷플릭스 제공



“난 죽을 거야. 반년 뒤에.”

일본의 한 대형병원 옥상. 17세 소녀 하루나(데구치 나쓰키)는 상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희귀병에 걸린 채 태어나 성인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하루나의 표정은 태연하다. 오히려 자신이 죽을 거란 말을 뱉어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싶단 투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동갑내기 소년 아키토(나가세 렌)는 놀라지 않는다. 자신 역시 불치병에 걸려 1년 뒤 죽을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아키토는 매일 하루나에게 병문안을 간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이성적 끌림으로 발전해 간다. 지난달 27일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영화 부문에 포함된 ‘봄이 사라진 세계’의 내용이다.

일본에서 2021년 출간 직후 45만 부가 팔리고, 국내 출판사 모모에서 지난해 4월 번역 출간된 동명의 원작 소설은 10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의 의미에 대해 깊게 들여다본다. 예를 들어 아키토가 아프기 전 그의 할머니 역시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아키토의 부모가 이 사실을 할머니에게 알릴지 고민하자, 아키토는 감추지 말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키토는 자신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이를 후회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가기보단 미리 사실을 알고 있어야 준비도, 각오도 할 수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뱉은 말을 후회한다. 듣지 않는 게 나았고 모르는 게 좋았다.”

영화는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소년의 ‘로맨스’에 집중한다. 특히 10대인 두 사람이 평범한 삶을 공유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잔잔한 사랑으로 그려낸다. 하얀 얼굴을 지닌 여주인공과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주인공의 눈빛을 섬세하게 담아 일본식 청춘 드라마를 살려냈다. 미키 다카히로 감독은 지난달 27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하지 못하고, 전해지지 않았고, 이룰 수 없었던 마음을 영화에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원작은 죽음을 앞둔 두 사람에게 ‘예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상세히 그린다. 소설 속 하루나는 병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은 마치 낙원처럼 보이지만 사실 천국이다. 이처럼 하루나에게 예술은 현실의 고통을 잊는 수단이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마치 이제부터 천국을 향해 가려는 듯한, 묘한 그림이었다.”

남겨진 사람의 뒷이야기를 별도 장으로 비중 있게 담은 것도 원작의 특징이다. 두 남녀 주인공을 그린 6개 장이 끝난 뒤 마지막에 ‘시한부 1년을 선고받은 친구를 좋아하게 된 이야기’라는 장을 넣어 두 사람의 친구인 소녀 미우라(요코타 마유)의 시선을 담았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희망을 품고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이에 비해 영화에선 미우라의 독백이 없다. 다만 미우라가 두 사람이 떠난 뒤 삶을 살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미우라는 아키토의 친구가 돼 병실을 지킨다. 아키토가 세상을 떠난 뒤 사랑을 뜻하는 꽃인 거베라 세 송이를 그의 빈소에 가지고 간다. 살아남은 자(미우라)가 죽은 자(하루나, 아키토)를 추억하는 장면을 애절하게 그려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년), ‘안녕, 헤이즐’(2014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년) 등. 죽음을 앞두고 사랑에 빠진 연인을 다룬 영화처럼 뻔한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 여자가 떠나고 남자가 이를 그리워하는 단순한 서사를 넘어, 연인이 남긴 삶의 희망을 살아남은 자가 이어가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니 우리 역시 남아 있는 나날을 충실히 살아내며 떠난 이들이 살아내지 못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