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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양종구]또 축구인 방패막이 삼는 대한축구협회 수장

입력 | 2024-07-16 23:15:00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대한축구협회가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경질하고 약 5개월 만에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을 지켜본 뒤 팬들은 물론 축구인들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엉성한 행정을 펼치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축구협회 최고 책임자는 정몽규 회장이다.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홍 감독을 선임하면서 “마지막 결정은 회장님께 보고하지 않았다. 최종 후보자 명단을 받고 회장님께 보고드렸더니 ‘지금부터 모든 결정을 다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이 총괄이사가 결정하고 책임도 지라는 뜻이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한 번은 실수지만 계속 반복되면 고의라는 말이 있다. 정 회장은 2013년 축구협회 수장이 되면서 늘 책임을 회피하고 뒤에 숨었다. 정 회장 체제에서 축구인 출신 임원들은 ‘얼굴마담’이었다. 각종 행사에 회장 대신 참석하지만 ‘실권’은 거의 없다. 축구협회 행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회장이 매번 책임져야 할 순간에 축구인들을 앞세우고 뒤로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꼬집었다.


책임져야 할 순간 축구인 뒤에 숨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뒤 ‘음주 영상 파문’까지 일자 당시 홍명보 대표팀 감독과 허정무 부회장이 희생됐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 계속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비난 여론이 멈추지 않자 홍 감독은 사퇴했고, 책임은 허 부회장이 지고 물러났다.

2017년 11월에는 당시 김호곤 부회장이 당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부진하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한 뒤 후임 감독을 찾는 과정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 재영입 논란’이 일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 측 한국 인사가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맡고 싶어 한다”고 김 부회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문자 제안이 문제가 됐다. “카톡 문자가 공식 제안이냐”는 김 부회장의 반발에 “제안이다”는 히딩크 감독 측 인사의 주장에 동조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히딩크 감독을 원하는 팬들의 무차별적 비난이 이어졌다. 축구협회는 모든 책임을 김 부회장에게 넘겼고, 결국 김 부회장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3월엔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선수 48명을 사면한 뒤 비난이 일자 사면을 번복하는 어이없는 행정을 펼쳤다. 그때도 박경훈 전무이사 등 축구인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정 회장은 그즈음 문제의 클린스만 감독을 사실상 독자적으로 영입해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다.


이번에는 홍명보 감독이 ‘희생양’


이번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축구인만 희생되고 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감독 선임 최종 과정에서 사퇴했다. 정 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감독에 앉히자고 했는데 정 회장이 반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축구인들이 비판하자 정 회장은 이임생 총괄이사에게 전권을 주는 척 뒤로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 총괄이사가 홍 감독을 최종 선택하자 축구협회 이사들로부터 서면 결의를 받아 홍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했다.

지금 평생 축구에 헌신해 온 홍 감독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어떤 설명도 없이 숨어 있다. 늘 그랬듯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자세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축구인을 방패막이 삼아 한국 축구를 퇴보시키는 정몽규 회장은 즉각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축구협회가 이런 난맥상을 보이자 상급 단체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등 최근 축구협회의 운영과 관련해 부적절한 부분이 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 때문에 한국 축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