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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신원건]3차원 세계를 2차원에 가두는 ‘사진감옥’

입력 | 2024-07-17 23:09:00

1978년 개봉한 영화 ‘슈퍼맨’에서 크립톤 행성의 중범죄자들이 갇히는 2차원의 감옥 ‘팬텀존’. 영화 ‘슈퍼맨’ 캡처



신원건 사진부 기자

“렌즈 뒤에 있는 사진작가가 자신도 모르게 또는 고의적으로 대상을 실제와 다르게 전달한다…유감스러운 경관은 어째서 끝없이 재생산되는가.”

미국의 건축평론가 세라 골드헤이건은 저서 ‘Welcome to your world’(국내 번역 ‘공간혁명’)에서 위와 같이 개탄한다. 건축가가 전문 사진가에게 의뢰해 촬영한 사진조차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설계물이 사진으로 어떻게 나올지 신경 쓴다. 건축주와 주변 동료, 건축상 심사위원 등이 사진을 보고 건물을 평가하거나 의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당연히 날씨와 빛이 최고일 때, 최적의 각도로 촬영한다. 골드헤이건은 “사진을 찍기 위해 디자인을 하는 셈”이라며 비웃는다.

사진은 빛을 이용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대상(오브제)을 기록하고 재현해 매개하는(보여주는) 미디어다. 이 과정에서 왜곡은 반드시 생긴다. 입체를 최소한으로 선택해 제대로 못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최고의 순간을 잡아 과장하기도 한다.

2차원 세계인 사진에서 우리는 3차원 공간을 연상하고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이나 대상은 4차원, 5차원이다. 소리 바람 냄새 질감까지 기록할 방법이 없다. 감으로만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도 영상으로는 잡을 수 없다. 과장하든, 축소하든, 사진은 현실의 일부만을 제한적으로 표현하는 ‘다운그레이드’ 미디어 맞다. 사진이 밋밋하면 ‘별로다’라며 면박을 받고, 반대로 실제보다 과도하면 ‘사진빨’이라는 흉을 듣는다.

건축가뿐 아니라 모든 예술 창작자는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유통한다. 도록을 위한 미술품 촬영, 무용 같은 행위예술의 스틸 컷 등. 창작자의 예술품을 ‘1차 저작(원형·Originality)’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기계적으로 기록한 사진은 ‘2차 창작물’이라 부를 수 있다. 예술 작품을 소재로 하는 사진 작품이다. 문제는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 굳어진 이미지는 전형(典型·Archetype)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실제 작품을 본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저마다의 해석이 나오겠지만 사진은 특정 시각만으로 해당 작품을 전형화한다. 사진가가 자신만의 ‘해석 권력’을 동원해 촬영하는 것. 심지어 이 2차 저작물은 독자적인 물성까지 갖는다. 예전엔 인화지였다면, 요즘은 디지털 픽셀로 모니터와 스마트폰에 등장한다. 도록은 책자 형태가 많다.

당연히 원작자들은 자기 작품을 기록한 사진을 못마땅해한다. 영상 외에는 다른 기록 방법이 딱히 없으니 촬영해 둘 뿐, 2차원 평면으로 작품성을 오롯이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진은 언젠가부터 가장 기초적이고 범용적인 기록의 도구가 됐다. 가장 쉬운 기록 방법이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동영상 등의 대안도 있지만 사진보다는 아무래도 기록 과정이 복잡하고 편집. 재생에 품이 든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피격 사건으로 AP통신의 사진이 큰 화제가 됐다.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낫다’는 보도사진의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피격 현장 같은 어수선하고 복잡한 사고를 사진 한 컷으로 정리하면 유용성이 크다는 것이 다시 입증됐다. 하지만 대다수 상황에서 사진 기록물은 모든 것을 다 표현하거나 설명해 주지 못한다. 반대로 과장하기도 한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많은 미디어다.

문제는 예술품은 물론 많은 사건들이 사진으로 유통되고 노출된다는 것. 진품 대신 사진으로 예술품을 감상하고, 사건을 체험하는 현실이다. 파리의 에펠탑,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직접 본 적이 없어도 누구나 안다. 실물이 아니라 영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 창작자들은 문화의 직접 체험을 강조한다. 전시회나 공연장에 와서 ‘직관’하라는 것이다. 같은 평면 작품인 회화조차도 사진으로는 붓 터치 같은 질감까지 느끼기 힘들다. 골드헤이건도 건축물은 반드시 직접 방문해 오감으로 경험하라고 주문한다.

사진은 쓰임새 좋은 기록 도구로서, 예술 장르로서 기능을 발휘해 왔지만 부정적인 이면도 공존한다. 영화 ‘슈퍼맨 1편’(1978년)에는 사진의 이런 어두운 면에 대한 은유가 나온다. ‘팬텀존’이라는 2차원 공간.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 행성의 중범죄자들이 갇히는 감옥이다. 반역 혐의 빌런 3명이 이곳에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3차원 오브제(빌런)와 복잡한 사건(반역)을 정지된 시간에 가둔 네모 평면. 시간도 멎어 있고 탈옥도 불가능한 이 ‘거울 감옥’은 영원히 우주를 유영한다. 사진도 복제를 거듭하며 디지털 세계를 끝없이 떠돌지 않는가.



신원건 사진부 기자 laputa@donga.com